<2017-07-15 격주간 제857호>
원로지도자의 4-H이야기 ‘만경(萬頃)’ (35)

한국4-H구락부중앙위원회(현 한국4-H본부) 탄생 <6>
- 폭풍에 시달린 클로버 4-H 깃발! -

연포(燕浦) 강 건 주 (한국4-H본부 고문)

중앙위원회 창립 이래 63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 4-H의 ‘내 집’에 정착하기까지 타의에 의해 여러 차례 조직의 변천과 운영체제의 개편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창기 4-H구락부 운동에 많은 관심과 열의를 가진 사업가, 전직 고관, 교육인, 언론인들이 참여하여 순수한 농촌청소년 실천사회교육을 지원코자 했던 본연의 취지와 목적이 그 동안 본궤도에서 이탈되어, 우리가 정답게 어울은 4-H전통과 주체성은 지난 날 약간 훼손된 바 있었다. 1988년 서울 종로구 종로1가 농협빌딩(청진동 입구) 정문에 한국 4-H후원회라는 간판과 함께 ‘잊어버린 4-H’를 다시 되찾게 된 것은 450만 4-H인들의 강력한 염원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싶다.
여기서 잠시 1920년 미국4-H 건물(National 4-H Center of America) 기증에 대한 역사적 일화를 소개하겠다. 당시는 미국 사회 각층과 여러 주의 독지가들로 결집된 중앙급 4-H활동지원 사업체 단일화가 구체화되는 시기였다. 그들의 활동은 눈부시게 활발했다. 미국4-H사를 보면 당시 그들의 중앙위원회 업무 공간은 시카고에 있는 허름하고 협소한 사무실에서 사무국장 E.T. Noble과 임시 여직원 한 사람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Noble은 당시 4-H행사를 위해 넓은 전시실이 필요했으나 그들의 낡고 허름한 공간이 너무나 비좁아 행사 개최에 어려움을 느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A.G. Leonard 사장이 경영하는 Union Stock Yard and Transit Co. 본사를 찾았다. Noble은 다이나믹한 인물로서 서슴없이 묻는다. “Leonard 사장! 우리 사무실에서 4-H행사를 개최하자니 너무 협소하여 애로가 많으니 적당한 장소 좀 구할 수 없을까?”하고 한마디 던지니 Leonard 사장은 즉석에서 “Noble 사무국장! 모자를 쓰고 나를 따라와” 하고는 그의 사무실 남쪽 Dexter Park Avenue에 위치한, 현관을 말끔히 수리하고 쓸모 있게 개수한 영국식 2층 벽돌 건물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Noble! 이것이 바로 당신이 바라는 건물이니 당장 인수토록 하라구!” Noble은 온 몸이 굳어 어리벙벙할 뿐이었다. 너무 감격하여 고맙다는 인사말조차 잊었다. Leonard 사장은 완전 무상으로 조건 없이 큰 건물 한 채를 미래 미국 4-H를 위해 기부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짐할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사회발전을 위한 미국인들의 기부활동과 사회공헌 정신이 미국을 오늘날의 부강한 나라로 만든 힘이었다고 할까? 과거 한국4-H 발전에 미국의 Leonard와 필적할 독지가 조인섭 사장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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