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잊지 않은 아이들과의 약속
김 성 기 지도교사(김포 통진중학교4-H회)
얼마 전 식구들과 서오릉을 갔다. 서오릉 입구는 조금 번잡했지만 그 안은 능 고유의 정취 그대로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고즈넉했다. 다만 진달래가 피는 이른 봄에 오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웠다.
나는 이곳이 조선 왕조 누군가의 능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50년 전 신영복 선생님과 여섯 명의 독수리 용사들의 봄소풍 그 광경이 궁금할 뿐이었다.
이 작품은 저자 신영복 선생님이 1969년 사형언도를 받고 육군교도소에 있을 때 쓴 글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1966년 이른 봄철 신영복 선생님이 문학회 회원들과 서오릉으로 봄소풍 가는 길에 만난 ‘춘궁의 느낌’이 드는 여섯 명의 꼬마들과의 인연에서 시작된다.
이날 이후 저자는 꼬마들과 함께 정식으로 ‘청구회’라는 명칭도 만들고 먼 미래를 위해 회비도 모으며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게 된다. 또한 아이들에게 자립 의지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도 하게 된다. 이 만남은 신영복 선생님이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이들의 만남은 사제지간의 관계보다는 나이, 빈부, 학력을 뛰어넘은 친구 관계에 가까운 그런 만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영복 선생님은 진정으로 이 아이들을 존중하였고 이들과의 순박한 약속을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1960년대 말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철저히 왜곡되고 굴절된다. 신영복 선생님은 구속 과정에서 청구회가 학생들에게 좌익 이념을 주입시키기 위한 단체, 국가 변란을 노리는 단체가 아니냐는 추궁을 받게 된다. 얼마나 코미디 같은 상황인가?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이 구절은 ‘청구회 추억’의 마지막 구절이다. 언제 죽을지 모를 사형수인 신영복 선생님은 어떤 기분으로 이 마지막 구절을 쓰셨을까?
이 작품은 오지 않을지도 모를 먼 미래를 생각하며 쓴 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순박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는 대단한 이념적 논의나 사회에 대한 항변 이러한 내용은 전혀 없다. 또한 죽음을 앞둔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두려움과 감정의 격정도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평온하고 잔잔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같은 이야기이다. 그 평온하고 잔잔함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고 그 깊이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의 책읽기가 장사나 사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 자신의 이해타산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잠시도 심심할 틈이 없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쉽고 짧지만 마음속의 울림은 한 없이 큰 동화책을 한권 선물하고 싶다. 그 책이 바로 ‘청구회 추억’이다.
〈신영복 글/ 조병은 역/ 김세현 그림/ 돌베개 펴냄/ 9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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