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1 격주간 제854호>
[영농현장] 내 인생의 벗이 된 4-H, 발전 위해 헌신할 터

김 호 영 회원 (전라남도4-H연합회 수석부회장)

드넓은 호남평야와 빛고을 광주를 가로질러 도착한 화순. 그곳에서 모내기로 손길이 분주한 김호영 전라남도4-H연합회 수석부회장(32·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사호로)을 만났다.
“시기에 맞춰 모내기를 끝내려면 바삐 움직여야 합니다. 논이 여러 곳으로 나눠져 있어 남들보다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죠.”
매일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김호영 수석부회장은 호탕한 웃음소리로 기자를 반겼다.

많은 고민끝에 고향으로

현재 아버지와 함께 13ha의 수도작과 한우 사육, 밀, 보리를 재배하며 연간 4억원이라는 조수익을 올리고 있는 김호영 수석부회장.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성공적인 영농을 하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농업에 종사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농업에 종사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농사일을 해야 했고, 특히 바쁜 농사철이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어떤 날은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에 가기 싫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지 않으면 부모님이 고생하신다는 생각에 곧장 집으로 갔습니다.”
학창시절부터 농사에 지쳐서일까, 김호영 수석부회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한 전문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그가 미처 보지 못했던 농업을 보게 됐다고.
“선후배들이 학점, 취업, 직장생활 등으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저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농업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 농업전문대학교를 가보지 않겠냐는 외삼촌의 권유에 천안연암대학교 축산과에 입학했습니다.”
김호영 수석부회장은 지난 2009년 졸업 후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농업을 다시 시작했다.

교육 통해 습득한 리더십 발휘

“처음부터 이렇게 계획적인 농사를 짓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아버지 세대와 저의 세대의 배움과 경험이 다르기에 부모님과 다툼이 많았죠. 그러던 중에 동네 선배가 너와 같이 젊은 농업인이 많으니 소통할 수 있을 거라며 4-H활동을 권유했습니다.”
선배의 권유에 바로 화순군4-H연합회에 가입했다는 김호영 수석부회장.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화순군4-H연합회장과 전남도4-H연합회 문화부장을 거쳐 올해부터는 도4-H연합회 수석부회장을 맡게 됐다.
“화순군4-H연합회장을 맡으면서는 정말 걱정이 많았습니다. ‘내가 회장직을 잘할 수 있을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들도 있고 나보다 어린 후배들도 있는데 과연 회원들이 나를 잘 따라 줄까’ 하는 걱정이었죠. 하지만 선배와 후배들은 회장인 저를 너무 잘 따라주었고 그 바탕에는 4-H기본교육과 지도력배양교육 그리고 야영교육을 통해 습득한 리더십에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취재에 동행한 이용정 전라남도4-H본부 사무처장도 김호영 수석부회장의 리더십은 청년회원과 지도자 사이에 이미 정평이 나 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끝으로 수석부회장이라는 자리는 나의 벗인 4-H발전을 위하여 헌신할 기회라 생각한다고 전한 김호영 수석부회장.
4-H금언을 바탕으로 모든 4-H인과 단합하고, 협동할 것이며, 소통할 것이라는 그에게서 진한 네잎클로버의 향기가 났다. 
 〈배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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