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여 ‘자우’를 잃었구나!”
以貌取人 失之子羽(이모취인 실지자우)
- 《사기(史記))》 중에서
많은 성현(聖賢)들이 입을 모아 ‘외모를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이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그 사람에 대한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 일이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음을 보여준다. 유가(儒家)에서 언급되는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정약용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관상(觀相)’에 대한 글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상론(相論)’이다. 정약용은 ‘상론(相論)’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서당에 다니며 공부하는 사람은 그 외모(相)가 아름답고, 시장바닥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그 외모가 어둡고 칙칙하며,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은 그 외모가 헝클어져 어지럽고, 노름꾼은 그 외모가 사납고 약삭빠르다. 이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 일상에서 몸과 마음에 익숙해진 것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간절한 것은 반드시 바깥으로 표현되는 법이다. 그래서 외모는 변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그 외모를 보고는 ‘아, 외모가 저러하니 저런 일을 하는구나!’라고 말한다.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인식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
상(相)은 눈(目)으로 나무(木)를 보는 것을 뜻한다. 왜 하필 나무일까. ‘주역(周易)’을 보면 “세상에 있는 것 중에 가장 볼만한 것을 뽑으라면 나무를 따라갈 것이 없다(地可觀者 莫可觀於木).”라는 문장이 나온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중에 나무가 으뜸이라는 것이니 눈에 보이는 것의 대표가 된 것이다.
정약용은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어떤 아이가 있는데 그의 눈동자가 빛나면 부모는 공부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책을 사들이고 좋은 스승을 찾아가 아이를 부탁한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니 아이는 총명해지고 나중에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크게 출세한다. 또 얼굴이 통통하게 태어난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장차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으로 생각해 아이에게 돈을 더 물려주고 여러 가지 업무를 가르치니 세상물정에 밝아져 결국 큰 부자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보잘것없이 생긴 아이에게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어 아무렇게나 대하게 되고 결국 천박한 삶을 살게 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결론은 외모가 삶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삶이 외모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약용이 18세기에 한탄했던 일이 21세기인 요즘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생각해보면 외모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기원전에 살았던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공자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인 담대멸명(澹臺滅明)은 매우 못 생긴 것으로 유명했다. 자(字)를 자우(子羽)라 했으므로 흔히 그를 자우(子羽)라고 부른다. 자우를 처음 본 공자는 그의 외모만 보고 ‘재능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이후에 그를 살뜰히 챙기지 않았다. 그러나 공자의 문하에서 공부한 이후 급성장한 담대멸명(澹臺滅明)은 나중에 300여명의 제자들을 거느린 대학자로 거듭났으며 여기저기서 초빙하려고 하는 유명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공자가 스스로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말 잘하는 것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다가 재여(宰予)에게 뒤통수를 맞더니, 외모로 사람을 판단했다가 자우를 잃었구나!(以貌取人 失之子羽).”
공자도 외모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자는 우리와 다른 점을 지니고 있었다. 공자는 스스로 반성했으나 우리는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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