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1 격주간 제854호>
원로지도자의 4-H이야기 ‘만경(萬頃)’ (32)

한국4-H구락부중앙위원회(현 한국4-H본부) 탄생 <3>

연포(燕浦) 강 건 주 (한국4-H본부 고문)

만성적 빈곤에 시달리는 우리 농촌에서 유일하게 미래지향적 가치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4-H구락부 회원들의 정성 어린 모습은 정말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아닌 공수래(空手來)’란 창조적 이념을 바탕으로 각종 과제활동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들 사회는 그들의 거룩한 미래에 침묵하지 않았다고 미국의 미래학자가 말했듯, 1923년 미국에서는 4-H구락부중앙위원회 그리고 한국에도 30년 후인 1954년에 한국4-H구락부 회원들과 그들의 자원지도자들을 후원할 각계 사회 독지가들이 일종의 4-H후원회 조직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과거 미국(1920년대)과 한국(1970년대까지) 양국 농촌청소년들의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혜택은 도시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격차가 너무 컸다.
미국에서는 도시인들이 시골사람(농민, 특히 젊은 사람들)을 비웃을 때 촌놈이라고 호박, 건초씨 등으로 경멸하기도 했고, 이에 대해 우리는 ‘촌뜨기’로 점잖게 대접받은 바 있다. 이런 사회적 멸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의 촌뜨기들은 4-H구락부 생활을 통하여 그들의 각성과 자긍심을 회복하여 점차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사회에 배출됐던 것이다.
만경생은 앤더슨과의 약속을 조속한 시일 내에 정확하게 작성하기 위해 우선 경기도 농촌청년구락부 연합회 관련자들을 방문, 그들에게서 참고가 될 정보를 얻도록 했다. 6.25 동란 수복 후 이들은 경기도연합회(명칭은 연합회로 부르나 후원회 성격) 복구를 다짐하였으나, 과거의 이사들이 대부분 중앙위원회에 흡수(이들은 과거 앤더슨과 인맥이 친근했음) 되므로 경기도연합회는 공백 상태였다.
우선 만경생이 만난 상대는 이진묵(李辰默, 과거 앤더슨 경기도 미군정지사 시 보좌관, 옛 경기도연합회 상임이사), 김갑영(金甲榮, 경기도 4-H지도자/교육훈련담당), 이병춘(李秉, 동 행사담당, 후에 경기도농사원장)에게서 많은 정보를 얻어 중앙위원회 조직 업무 진행에 점차 동력을 얻게 되었다.
만경생은 앤더슨에게 이들 과거의 경기도4-H 3인방을 점진적으로 중앙위원회 실무진으로 합류하는 것이 대단히 유익할 것이라 제의했으나 대답은 ‘NO’, 참으로 무정한 판단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이진묵 상무이사는 미군정시 앤더슨의 농촌 행정에 대하여 여러모로 의견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앤더슨은 “짐 리(Jim Lee, 이진묵의 미국명)는 건건마다 나의 업무에 반발하여 내가 ‘No Jim Lee!’라고 별명을 지어준 일도 있지”하면서 과거를 회상한 바도 있었다.
앞으로 중앙위원회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니 지금 내가 헛수고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생겼다. 왜냐하면 누가 상무 혹은 사무국 책임자가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해당자는 최소한 4-H운동에 대한 활동분야와 농촌지도사업의 취지, 그리고 위원회 회원들에게서 어떻게 기증금 혹은 회비를 징수하는 묘(妙)를 살릴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난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이런 부분을 해결할 귀한 인재를 찾기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였다. 이진묵은 그 당시 미국아동보호와 지역사회개발재단 한국사무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이진묵은 한국의 저명인사들과의 교분도 꽤 넓은 편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만경생이 앤더슨 최측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진묵은 만경생을 좋게 대접해 많은 경기도연합회 서류와 ‘이야기’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어 이후 매우 용이하게 활용했다. 서류 중에 경기도연합회 정관과 이사들 명단 그리고 당시 발행한 경기도 4-H활동 소식지인 ‘노청’을 수집하게 되어 많은 도움이 된 것이다.
앤더슨이 과거 경기도연합회 이사들 전원을 중앙위원회에 영입한 까닭은 이들이 미군정시 앤더슨과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 사업가 대부분은 광복 후 일인들이 소유했던 소위 기속재산(적산기업)을 인수 경영하여 미군정과 친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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