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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격주간 제85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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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착한나들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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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노랑이 천지에 새봄을 만들고 있었다. |
아는 사람으로부터 수리산으로 등산을 가자는 전화가 왔다. 수리산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군포시 산본리에 있다고 했다.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산본리라니… 그곳은 잊지 못할 친구, 은숙이가 살던 곳이었다. 나는 두말 않고 가기로 했다. 산본리는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은숙이는 학창시절 내내 붙어 다닌 단짝이었다. 은숙이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아이였는데 고3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 사업이 망해 산본리로 이사를 간 것이다. 그리고 소식이 끊겼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주소를 들고 물어물어 산본리를 찾아갔다. 버스에서 내린 산본리는 논과 밭뿐인 시골이었다. 그녀의 집은 초라했고 돌담은 무너져 있었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대학에 합격했던 그녀는 공장을 다니고 있었다. 동생이 둘인데 당장 먹을 게 없었던 것이다. 은숙이는 예전의 은숙이가 아니었다. 내게조차 별말이 없었다.
그 후 은숙이는 집을 나가 소식이 끊겼다. 매달 주소 없이 집으로 돈만 보내온다는 것이다. 나는 몇 번인가 은숙이 없는 산본리를 찾아갔다. 라면 박스를 이고 거름 냄새 나는 시골길을 걸어가면 은숙이 동생 경희가 뛰어나와 반겼다. 우리는 라면을 끓일 때 깻잎을 한 바구니씩 따서 넣었다. 양을 불리기 위해서였다. 김치도 없는 상을 들고 들어가면 은숙이 아버지는 불도 켜지 않은 채 기침을 하며 앉아계셨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은숙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눈이 파란 아이를 안고 나타났다. 국제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공항에서 그녀를 보내던 날, 나는 거리를 헤매다 명동성당으로 갔다. 나는 무신론자지만 은숙이를 생각하며 눈이 붓도록 울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의 편지 왕래 끝에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나는 지인과 약속한 산본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상상 속의 산본리는 전설처럼 사라지고 거리엔 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은숙이도 산본리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서러워져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에선 거름 냄새 풍기던 산본리가 떠오르고 둥근 얼굴에 단발머리 은숙이가 보였다. 은숙이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그녀도 나를 생각할까? 나는 은숙이를 찾으려고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기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톨스토이는 말한다.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게 사람이라고. 한 시간 후면 죽을 사람이 구둣방에서 일 년 이상 신을 수 있는 튼튼한 구두를 맞춘다는 것이다. 나도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인간이었다. 공항에서의 이별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뒤돌아보며 꼭 편지하겠다고 손 흔들던 은숙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이사 다니느라 답장도 제때 못 하고 주소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던 지난날들. 나는 그때 필요한 게 무언지 몰라 은숙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수리산 입구에서 봄내음 가득한 시골길을 만났다. 모든 게 사라졌던 길가엔 그리운 추억처럼 햇쑥이 돋아나고 저만치 밭둑에선 은숙이 닮은 꽃나무가 하얗게 웃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사람은 따뜻한 기억으로 살아간다고.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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