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01 격주간 제852호>
원로지도자의 4-H이야기 ‘만경(萬頃)’(30)

한국4-H구락부중앙위원회(현 한국4-H본부) 탄생 <1>
- 고역과 침체 그리고 자립을 위한 투쟁 -

연포(燕浦) 강 건 주 (한국4-H본부 고문)

1954년 이른 여름은 한국4-H운동에 역사적 전환점을 찍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은 전국4-H운동을 민간차원에서 지원·지도할 소위 ‘한국4-H구락부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원회’)가 창립된 날(1954. 11. 9.)이기도 하다. 그날 많은 농업인, 언론사 그리고 사회 식자들에게서 축하와 격려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전국 농촌 마을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는 농촌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순간이었다.
1955년 당시 우리 농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다. 전국 총 인구 2150만명 중 농가인구가 1330만명으로 62%에 달했지만, 전국 축우 42만두 가운데 농경용 축우(밭갈이 가능한 소)는 약 1000두에 불과했고, 경작면적 1정보(9917㎡) 미만 농가가 전체 농가의 74%, 5단보(4958㎡) 미만 농가가 43%를 차지했다. 또한 국민 1인당 GNP는 약 80달러(실질적으로 50달러 미만)로 세계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최하위권에 랭킹되어 국민들의 사기는 완전히 실종된 상태였다. 이를 반영하듯 절량농가(양식이 떨어진 농가), 농가 부채 관련 기사가 매일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한국에 세 번째로 내한한 C.A. 앤더슨은 한미재단 지원을 적극 활용하여 한국4-H운동을 위해 물적·인적 지원을 강력히 전개하겠다고 예고하였다. 그는 정착 3개월 되던 날 한국에 4-H민간기구를 조직하려는 계획을 털어놓으며 만경생의 소견을 물었다. 만경생은 2개월 전에 앤더슨이 읽어보라고 권해준 초록색 책, 즉 미국 4-H의 역사(The 4-H History, by F.M. Reck, 1951년, 만경생 지금도 보관 중)를 떠올리며 의견을 제시하였다. 만경생은 이 책의 15장 ‘The National Committee is Formed’와 16장 ‘Early Days of the Club Congress’를 특히 관심을 갖고 숙독한 바 있어서 의견을 교환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만경생은 중앙위원회 설립은 환영받을 일이나 아직은 때가 이르다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앤더슨은 이에 당혹스러워 했다. 추가적으로 현재는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재원을 중앙위원회 설립이 아닌 더 시급한 과업(Project), 즉 4-H자원지도자와 연장 남녀부원 강습회 개최, 경진대회 개최와 지원, 4-H과제물자(가축, 채소 종자 등) 지원을 우선 추진해야 됨을 역설하였다.
앤더슨은 이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빠른 시일 내 중앙위원회를 설립하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첫째, 내년 봄에 미국에 가서 한국 4-H지원을 위한 우정물자 모집과 모금운동을 약 3개월간 전개할 예정이며, 이후 도입되는 4-H우정물자의 인수기관으로 중앙위원회를 염두에 두고, 둘째, 올 가을에 전국4-H경진대회 개최를 계획, 셋째, 한국4-H운동을 지원할 공식 민간기구를 조직하여 모금운동과 홍보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앤더슨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다보니 만경생의 생각과 어느 정도 접근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 중앙위원회가 발족되면 향후 3~4년간은 앤더슨과 만경생에게 과중한 업무가 부과될 것이고 이를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하지만 만경생은 앤더슨의 제의에 결국 승복하고, 그를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계속하여 앤더슨은 만경생에게 지금(6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중앙위원회 창립 총회 로드맵(Roadmap, 당시는 Daily Schedule이라 함)을 작성해보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예산(비용 한미재단 제공)과 회원 모집과 사업 계획, 기타 상세한 설명(창립취지, 목적)과 정관(회칙)안 등을 국·영문으로 작성하여 제출해 주기를 원했다. 당시 만경생은 한국농사교도사업 설정 업무 관계상 농림부 실무자들과 수시로 만나는 중이어서 앤더슨의 부탁은 다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좋은 4-H 만들기’라는 막중한 사명감으로 중앙위원회 창립 업무에도 전력투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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