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서 연 (화성시4-H연합회 부회장)
2016년 6월 20일. 독일은 3년 전 연수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IFYE 선정 후부터 독일의 날씨와 유명한 도시 등을 검색하며 한껏 부푼 마음으로 일정을 준비하였다. 그 중 하나는 맥주의 고향이라는 독일의 다양한 맥주를 음미하고 오겠다는 각오는 일정의 즐거운 소재 중 하나였다.
기대에 부응하듯 호스트 가족들은 40여 가지의 맥주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고 핸드폰에는 아직도 ‘맥주’라는 폴더에 다양한 맥주사진이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아있다.
두 달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6~8월이라는 계절 특성상 따스한 옷과 반팔을 같이 챙기려다 보니 큰 가방도 모자랄 만큼 짐이 커졌는데 가져갈 때는 유용할거라는 생각과 달리 지내는 동안 큰 짐으로 인해 예상 못한 불편함이 있었다.
나는 두 달 동안 2주씩 네 곳의 호스트가족을 만났다. 첫 호스트 가정에 방문한날은 독일과 북아일랜드의 유로컵이 있던 날이었다. 유로컵 또한 독일에서의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로 남는데, 가족들과 맥주를 마시며 함께 시청했다. 두 달 동안 나는 밥이 아닌 빵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빵이 입맛에 맞았고 다양한 치즈로 인해 몸무게는 두 달간 6kg이나 늘었다.
첫 호스트 가정에서 지내면서 독일의 웨딩문화를 맛볼 수 있었다. 신랑, 신부는 교회에서 경건하게 친척과 두 세 명의 친구만 증인으로 초대해 서로의 혼인을 약속했다. 하객들에게 와줘서 감사하다는 신랑, 신부의 브리핑에서 ‘쑤뜨꼬레아’에서 온 나를 일으켜세우며 인사시켰다. 부끄러웠지만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추억과 멋진 문화라 기억되는 일 중 하나다.
두 번째 호스트 가정은 이혼한 핵가족이었다. 가까운 동네에 아버지가 살고 계시지만 이혼하였기 때문에 딸과 아들, 엄마 셋이서 지낸다고 했다. 나의 네 호스트 가정 중에서 가장 많이 대화했던 가족이다.
독일은 굉장히 역사가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첫 번째 호스트 가정만 해도 집이 100년이 지난 건물이라 했고, 두 번째 호스트 가족도 2차 세계대전의 피해가 없던 동네라 120년 정도 된 집이라고 했다. 심지어 세 번째 호스트 가정의 경우에는 150년 이상 된 집이었다. 개발이 멈추지 않는 우리나라는 부수고 짓고를 반복하는데 이렇게 작은 가족들이 살아가는 집도 1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걸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세 번째 호스트 가정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이 호스트 가정은 내가 있던 호스트 가정 중 유일하게 농업을 하는 곳으로 100ha정도 사탕수수, 밀 등 몇 개의 작물을 키운다고 했다. 이 가정의 아버지 직업은 공무원으로 부업 삼아서 부모님이 남겨주신 30~40ha에 농사를 지었고, 현재는 퇴임을 한 뒤에 70ha정도는 동네에서 빌려서 농작물을 키운다고 했다. 세 번째 호스트 가정과의 추억 중 하나는 ‘jettebruch summer’ 축제였다. 축제 장소는 마을의 한 농장 창고였다. 푸드 트럭 두 대와 함께 남녀노소가 춤을 추며 놀았다. 10대부터 70대 그 이상의 다양한 세대가 쿵쾅거리는 음악 속에서 함께 놀았다.
네 번째 호스트 가정은 네 가족들 중 가장 젊었다. 만 3살, 5개월 된 아이들이 있었다. 이때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하던 때이다. 한국과 독일의 양궁 결승전을 보면서 서로가 숨죽이고 파이팅을 외쳤다.
네 번째 가정에서 지내는 동안 젖소농장에서 착유시스템과 착유하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도 했다.
두 달 간 지낸 네 가정 모두 잊을 수 없는 나의 독일가족이었고, 또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독일의 다양한 생활양식과 농촌문화 등을 알 수 있는 뜻 깊은 두 달의 시간이었다. 다시 또 기회가 닿아 독일가족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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