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사교도사업, 4-H) 관련 통상 용어 정리 (2)
연포(燕浦) 강 건 주 (한국4-H본부 고문)
우리나라에 영어가 교육시설을 통하여 첫 도입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지방에 설치된 고등교육시설과 대학(지방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이후 중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에서 실시된 것이 그 시초였다. 이에 앞서 서울에 관립영어학교를 설립한 바 있다. 특히 서울 YMCA, YWCA 등에서도 개별적으로 영어교육(외국 선진학술 도입을 위해)을 장려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농업에 관련된 영어는 보잘 것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사용된 많은 농업 관련 용어와 표기는 한문(漢文)을 일본식으로 표기함과 동시에 우리말 표기법이 혼용되어 결국 ‘언어 혼혈아’로 변질된 바 있다.
일제의 농업지도사업은 철저히 강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지도방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용어와 표기법은 마치 민주적인 것으로 포장되어 외국인과 지도사업 초심자들에게는 큰 혼동을 주었다. ‘지도사업’이란 ‘어감’에는 두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민주적 지도사업’ 그리고 또 하나는 강제성을 띤 구 봉건왕조시대와 일제강점기의 ‘강압적 지도사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이조는 권농정책과 권농관 전국 순회 그리고 교서(칙유, Royal Mandate)를 통하여 봉건 국가의 본질인 농민 수탈을 감행하면서도 인구의 대다수인 농민보호육성을 망각하지 않았다. 때로는 ‘농량(농사지을 동안 먹을 양식)’, ‘종곡(종자)’ 및 가축을 빌려주기도 하였다. 특히 세종은 국민 안정, 농사연구, 복 개수, 농구 개량, 종자, 수경 재배를 장려하기 위해 ‘권농지본’, ‘권농교문’ 등의 농서를 발행한 바 있다.
표에서 예시한 농업용어 사례 외 우리말과 영어 활용은 이후 미국파견 국제교환훈련(IFYE)생들과 농촌지도공무원 해외파견, 1970년대 미국 파견 장기 농업연수생들의 사전교육에 활용되어 크게 성과를 냈음은 지금도 만경생의 선견지명이 아닌가 자가만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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