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확대, 농사교도사업 채택
1947년 경기도 지역에서 시작된 4-H운동은 1950년대에 국가시책사업으로 채택되었다. 활동 회원은 15~30만명이었다. 한미재단이 창설되어 4-H자원지도자교육을 실시하고 과제물자를 지원했다. 특히 한국4-H구락부중앙위원회(한국4-H본부)가 창립되어 제1회 4-H구락부중앙경진대회를 개최했다. 과제활동으로는 재봉·자수 등 의장개선과제, 개량고추장과제, 연시·웅변과제, 토양보존과제 등이었다.
4-H육성체계 확립, 농기술 보급
1960년대는 4-H육성체계를 확립하고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활동 회원은 55~70만명이었다. 농촌진흥청이 발족돼 4-H업무를 관장하게 되었고, 4-H농장훈련 실시 및 4-H중앙농업기계훈련소를 운영했다. 농촌청소년교환(IFYE)사업이 실시되었으며, 한국4-H신문이 창간됐다. 과제활동으로는 마을문고 설치과제, 감자다수확과제, 쥐잡기과제, 가축사육과제 등이었다.
농어촌 환경개선, 새마을사업 연계
1970년대는 농어촌 환경개선과 농업생산 기반을 정비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새마을사업과 연계해 추진되었다. 활동 회원은 회원수 55만명 내외였다. 아시아 농촌지도자 세미나를 개최했고, 한미 농업연수 훈련사업이 실시됐다. 지방4-H농기계훈련소가 시군에 설치되었으며, 4-H가창교육과 합창단을 운영했다. 명칭이 4-H회에서 새마을청소년회로 바뀌고 회원 연령도 29세로 늘어났다. 과제활동으로는 닭기르기과제, 오락과제 등이었다.
4-H명칭 환원, 중앙연합회 결성
80년대 중반에는 회원이 100만명으로 확대되는 등 최전성기를 누렸다. 4-H명칭을 되찾았고, 한국4-H회관을 기공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활동 회원은 60~100만명이었다. 시도후원회를 사단법인으로 하고 기금을 확충했으며, 한국4-H중앙연합회를 결성(1981년)했다. 한국4-H운동 40년사를 발간했다. 회원 활동으로는 농번기탁아소과제, 벼다수확과제, 민속과제, 환경미화과제 등이었다.
회원교육 강화, 학교4-H 육성
90년대에는 영농회원 교육에 역점을 두었는데 특히 특화작목 교육으로 농업의 활로를 모색하는 한편, 학교4-H회를 크게 확대했다. 활동 회원은 7~13만명이었다. 문화탐방, 도농교류 등의 활동을 펼쳤다. 4-H운동 50주년 기념상을 수원 농촌진흥청에 건립하고 한국4-H운동 50년사를 발간했다. 주요 회원 활동으로는 새끼꼬기, 복주머니만들기 등 민속공예품과제, 사물놀이과제 등이었다.
농업·환경·생명운동으로 추진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시대변화에 맞는 4-H활동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농업·환경·생명운동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활동 회원은 7~8만명이었다. 회원 연령을 만9~34세로 조정하고 4-H활동 프로그램 개발 및 교육교재를 발간했다. 한국4-H활동지원법이 제정되었고, 한국4-H본부가 4-H활동주관단체로 지정되었다. 제1회 글로벌4-H네트워크 세계대회를 개최했으며, 회원 활동으로는 학교텃밭 가꾸기-야생화과제, 4-H그린프로그램과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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