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임명을 받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센터 옥상의 게양대에 4-H기를 달았던 것이다"
제 해 신 (장흥군농업기술센터 소장 / 전남4-H본부 감사)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마을에 운세를 보는 사람이 찾아와서 주막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분을 만날 기회가 있어 사주를 풀어 보더니, 농촌의 지도자 또는 선구자가 될 운세라고 하셨다.
이상스럽게도 그 말을 듣고 마음 한구석에는 농촌에 관심을 갖고 살았던 터라, 자연스레 농업고등학교를 선택하게 됐고 마을의 4-H회에도 가입해 활동하게 됐다.
1974년부터 시작된 나의 4-H생활은 과제활동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업고등학교 축산과에 재학 중이라 ‘한우 기르기와 양잠과제’를 이수해 군경진대회에서 ‘수급’을 받아 부상으로 농기구를 받았고, 축산분야 현장경진 대표회원으로 선발돼 전남4-H경진대회에도 참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도 4-H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오면서 군단위 4-H임원 활동과 함께, 한미재단 4-H훈련농장(당시 경기도 부천 소재)에 1개월 과정을 수료했던 추억도 있다.
1977년 6월 농촌지도직 발령을 받아 여천군농촌지도소 돌산지소 4-H담당을 맡아 최일선에서 청소년지도활동을 해왔으며, 보성군농촌지도소와 경기도 양주군농촌지도소에서 4-H담당자로도 활동했다.
4-H담당을 맡고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4-H운동은 격동기를 맞는 시대라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4-H회의 명칭이 4-H구락부에서 새마을청소년회, 4-H회 등으로 변모했지만 당시 활동했던 선배회원들의 많은 노력으로 4-H정신이 훼손되지 않고 지금까지 꿋꿋이 이어져 왔던 것은 정말 자랑할 만하다.
30대부터 줄곧 나는 4-H동문회 활동을 해오고 있다. 보성군4-H동문회 총무를 맡아 회장을 보필하면서 4-H경진대회에서 ‘동문의 밤’을 개최했고, 4-H본부로 명칭이 바뀐 지금도 전남4-H본부 감사직을 맡아 후배 4-H회원들의 사기 함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흥군4-H본부는 회원 300여명이 가입해 활동 중인 명실공히 도내에서 가장 활성화 돼 있는 조직이다. 올해 하계수련대회를 개최했는데 33회째가 됐다.
70세가 가까운 원로 4-H인부터 30대까지 젊은 회원들이 총 망라해 활동 중에 있다. 우리 센터는 이러한 4-H본부에 매년 예산을 지원해 활동을 촉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4-H신문 장흥군지국 사무소를 겸한 4-H본부 사무실 운영을 위해 집기 등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동문회원들의 연찬교육에서는 센터 예산 지원 등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흥군4-H 육성지원조례 제정, 장흥군4-H본부 하계수련대회 개최, 군예산(연750만원) 지원, 영농4-H회원 시범농장 육성 과제자금(1인당 500만원) 지원 등은 4-H회원 출신으로 꼭 해야 할 일을 했던 것 같아 가슴 뿌듯하다.
또 하나의 보람이 있다면, ‘장흥군4-H 50주년 기념탑’ 건립을 4-H담당계장 시절 추진해 지금도 장흥군민회관 앞 도로변에 당당히 서있게 했다.
10여년 전 일이었던 것으로 회상된다. 대도시에 출장길이 있어 걸어 나가고 있는데 20대 초반 남짓한 청년이 숨 가쁘게 뛰어오더니 내게 인사를 하면서 ‘선생님’하는 것이다. 잠시 멈칫 한 순간, 그 청년은 4-H담당선생님이었던 나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면서 당시 배웠던 4-H정신이 지금도 많은 보탬이 된다는 말도 곁들여 줘, 가슴을 감동시켰다.
‘한번 4-H인은 영원한 4-H인이다.’라는 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지(智)·덕(德)·노(勞)·체(體)의 가장 이상적인 정신을 받아들인 학생4-H회원들이 앞으로 농업의 선구자로, 관료로, 경제인으로 성장했을 때 ‘4-H’ 말만 들어도 무슨 도움이 필요로 하는 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실례로 중동·아프리카 한국상인회장으로 활동 중인 분이 최근 장흥군4-H 기금으로 1000만원을 기탁한 것도 이런 밑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지난해 8월 장흥군농업기술센터소장으로 임명을 받은 내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농업기술센터 옥상에 있는 게양대에 4-H기를 달았던 일이다.
숭고한 4-H기를 옥상에 달며, 이렇게 다짐했다.
‘좋은 것을 더욱 좋게, 실천으로 배우자’라는 4-H금언처럼 살아간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