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5 격주간 제843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그녀가 나에게 준 것
다시 찾아간 경포호엔 노을이 지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캄캄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내가 몰고 있는 차는 오래 전 폐차한 ‘기특이’였다.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도로엔 차도 인적도 끊겨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 기특이를 몰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도는 순간 얼음에 미끄러지며 바퀴가 덜렁 들렸다. 그 다음 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특이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산에 머리를 들이박고 있었다.
안경도 모자도 벗겨져 나가고 없었다. 나는 조금 열린 문틈으로 겨우 빠져나와 보니 앞범퍼가 반은 주저앉아 있었다. 반대편에서 차가 달려오면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시동을 걸었다.
다행이 시동은 걸렸지만 내리막길이라 한발 나가면 두발 미끄러져 내렸다. 그때 저만치 달려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난 놀랐다. 지난날 내게 일어났던 사고가 꿈속에서 재현된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인데 너무나 생생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 기특이가 나와의 추억을 그리며 다녀간 건 아닐까?
기특이는 내가 처음 산 차이고 첫 정이고 보물 1호였다. 기특이랑은 12년 동안 붙어 다녔다. 내 삶이 힘들어 방황할 때 나는 기특이 덕분에 자유로웠다. 나를 어디든 데려다 주던 친구.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음악을 듣고 빗소리를 들었다. 그 안에서 울기도 하고 같이 죽을 뻔한 적도 많았다. 기계도 오래 함께하면 동물처럼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폐차할 때 기특이는 큰 차에 묶여 끌려갔다. 커브를 돌아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사람을 버린 듯, 몹쓸 짓을 한 듯 죄의식이 들었다. 기특이 몸뚱어리가 조각나 버려질 걸 생각하니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았다.
새 차를 사고도 통 정이 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길에서 회색빛 엑셀차를 보면 가슴이 철렁해서 번호판부터 봤다. 기특이의 번호는 4746이었다.
나를 정말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어릴 적 친구였는데 나를 맹목적으로 믿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글을 쓰는 게 무슨 벼슬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아는 사람은 내 이름도 알았다.
나는 그것이 싫어 짜증을 내곤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걸 내게 이야기했다. 삶이 구차할수록 이야기는 길어졌다. 생일도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삐치고. 그녀의 엄마가 아파도 내가 가야했다. 그녀는 나를 언니처럼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주기만 한다는 게 귀찮아졌다. 그래서 슬슬 피하고 싶어졌을 때 그녀는 폐암에 걸렸고 6개월 만에 저 세상으로 갔다.
그녀가 떠나자 내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나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자랑스러워하던 단 하나의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연말이 되니 차나 사람이나 다 그립다. 함께 해온 세월이 그리운지도 모른다. 기특이가 꿈속으로 온 것처럼 친구도 생시와 같은 모습으로 꼭 한 번 와주면 좋겠다. 언젠가 둘이 갔던 경포 호숫가에 서서 그녀 손을 잡고 말하고 싶다.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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