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5 격주간 제843호>
[이 한 권의 책] 시인 / 동주

청년 윤동주를 만나다, 시인 동주를 만나다!

최 현 주 지도교사(시흥 군서중4-H회)

지난 여름엔 아주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우리의 말과 글을 사용하는 것이 죄가 되었던 시절, 우리 글로 써내려간 시들을 통해 일제통치에 저항했던 시인 윤동주, 그 분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 시간에 듣는 가장 많은 질문은 ‘역사는 공부하기가 힘들어요. 도대체 역사공부는 어떻게 해야 해요?’와 같은 푸념들이다. 국어, 영어, 수학처럼 사교육의 도움을 빌릴 수도 없으니 학생 입장에서는 공부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이 질문에 한결같은 답을 해준다. ‘그 당시의 사람이 되어 상상하라, 그리고 재미있는 역사소설을 많이 읽어라.’
요리에 비유하자면,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요리 재료를 가지고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갖은 양념을 통해 만들어낸 맛깔난 음식이다. 그러나 재료와 양념의 배합이 잘 이뤄지지 못했을 때를 상상해보라. 가령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역사소설은 독자에게 재미를 줄 수 없을 것이고, 문학적 상상력에 치중하다보면 허구의 이야기들이 마치 역사적 진실인 것처럼 포장돼 역사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심어주는 우를 범하기 쉽다. 그래서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의 과정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반소설보다 훨씬 더 까다롭게 쓰여진다. 그리고 이 고증의 과정을 잘 거친 작품이야말로 역사 학습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안소영의 역사소설들은 재료와 양념의 배합이 잘 이뤄졌을 뿐 아니라 영양가도 높은 요리에 해당한다.
소설은 1938년 경성역에서 시작된다. 동주는 고종사촌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송몽규와 연희전문학교 진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경성역에 도착한다. 하지만 도착해서 맞이한 경성은 거리에 나부끼는 일장기와 일본사람들로 어두운 식민지의 그늘이 드리워진 서글픈 도시였다. 연희전문학교 문학부에 진학했건만 일제의 압박은 대학에까지 파고들었다. 존경했던 최현배 교수가 강단을 떠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했고, 수많은 문학인들이 일제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조국을 배신하게 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동주는 깊이 침잠해간다.‘슬픈 족속’, ‘십자가’는 이 시기 동주의 내면을 보여주는 시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은 급기야 조선 청년들을 강제 징병하기에 이른다. 징병을 피하기 위해 동주가 선택한 것은 일본 유학. 그러나 유학생이 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창씨개명 앞에 동주는 또 한번 절망한다. 이 절망 속에‘참회록’을 쓰게 되고, 이 시를 쓴지 닷새 만에 히라누마 도오슈(平沼東柱)로 창씨개명한 이름을 제출한다. 그렇게 동주는 일본유학을 떠난다. 그 옆에는 동경제대 사학과에 합격한 송몽규도 함께였다. 도시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로 학교를 옮긴 동주는 모든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군사훈련을 거부하다 교실에서 몰매를 맞는 조국 없는 서글픈 청춘이었다. 결국 일본의 패전을 거론했다는 구실로 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치안유지법 위배로 후쿠오카 형무소로 수감된다. 이곳에서 동주는 생체실험용 주사를 강제로 맞게 되고, 결국 1945년 조국의 해방을 몇 달 앞두고 소설에서처럼 형무소 담장 너머 창 밖의 별에게로 갔다. 그의 영원한 벗 송몽규도 얼마 후 동주의 뒤를 따르게 된다. 스물일곱의 짧은 삶이 이렇게 끝이 났다.
동주는 연희전문학교의 졸업을 앞두고 자신의 시들을 모아 시집으로 담았다. 하지만 살벌한 일제의 감시 속에 시집은 결국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의 소중한 벗이었던 고(故) 정병욱 서울대 국문과 교수에 의해 보관됐다. 자신의 죽음을 예측했던 것인지 시집을 친구에게 맡겼고,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정병욱은 징병으로 끌려가는 처지에서도 동주의 시를 고향 부모님께 부탁드려 안전하게 보관케 하고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다. 그렇게 극적으로 간직됐다가 해방 이후 출간된 시집이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그리고 일본 유학 시절, 절친했던 또 한명의 벗이었던 강처중에게 보냈던 몇 편의 시들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등단조차 하지 못했던 무명 시인 동주는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을 것 같았던 좌절과 슬픔의 시대에, 왜 그토록 시를 써야 했을까? 일제 치하의 시기에 태어나서 끝내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온전히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던 동주, 그의 삶은 이처럼 어느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온 청춘을 다해 조국의 자유를 꿈꿨을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 애절함, 동주의 시는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을 노래하게 한다.
〈안소영 지음 / 창비 펴냄 /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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