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1 격주간 제842호>
[우리얼 돋보기] 강진 정약용 유적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유배되어 11년간 머물면서 많은 책을 저술했던 곳으로 사적 제107호다.
이곳에서 11년 동안 머물며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500여권에 달하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리고 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는 ‘철학’, ‘법제’, ‘종교’, ‘악경’, ‘의술’, ‘천문’,‘측량’, ‘건축’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장래에 도움이 될 학문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학술적 연구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백성의 입장에서 농민의 실태, 서리의 부정, 토호의 작폐, 도서민의 생활 상태 등을 낱낱이 파헤친 목민심서도 이곳에서 완성했다.
옛 초당은 무너져서 1958년 강진의 다산유적보존회가 주선해 건물이 있던 자리에 지금의 초당을 다시 지은 것이다. 작고 소박한 남향집으로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당 뒤 언덕 암석에는 다산이 직접 깎은 ‘정석(丁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초당 왼쪽으로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 앞 뜰에는 차를 달였다는 ‘청석’이 있고, 한켠에는 ‘약천(藥泉)’이라는 약수터가 있어 당시 다산의 유배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자료참고·사진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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