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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5 격주간 제84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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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착한나들이] 내 마음에 촛불을 켜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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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핸드폰과 함께 뜨겁고 환한 것을 건네주었다. |
며칠 전 나는 용산역 분실물센터에 갔다. 내가 잃어버린 핸드폰이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찡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닿았던 핸드폰! 그것은 많은 의미를 포함한, 이미 이전의 핸드폰이 아니었다.
나는 워낙 건망증이 심하다. 핸드폰을 화장실이나 택시 안이나 식당에 두고 오기도 한다. 허둥지둥 달려가 찾아보지만 핸드폰은 일단 사라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이틀 동안 강의가 있어 기차를 타고 홍성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가는 중 핸드폰이 없어진 걸 알았다. 신제품으로 큰맘 먹고 핸드폰을 바꾼 지 이틀 만이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릴 때마다 느끼는 당혹감은 거의 절망적이지만 이번에는 더 아득했다. 택시 기사는 허둥대는 나를 보고 한쪽에 차를 세우고 내 전화번호로 신호를 울려 주었다. 그러나 가방에 없는 핸드폰이 소리를 낼 리가 없었다. 나는 순간 홍성역 화장실이 생각났다. “아저씨, 홍성역 화장실에 놓고 왔나봐요. 어떡해요. 내 번호로 전화를 좀 계속해주세요!”라고 급히 부탁을 하고 내렸지만 믿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남편과 아이들 전화번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허수아비가 된 기분이었다. 낯선 곳에서 핸드폰이 사라지자 가족도 나도 모두 사라졌다.
강의를 하는 내내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시간을 알 수 없어 학생의 시계를 빌려 보면서 진행해야 했다. 그 와중에 학생 핸드폰으로 내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으나 이미 꺼져 있었다. 그건 주운 사람이 돌려줄 생각이 없다는 가슴 철렁한 선언이었다. 나는 핸드폰 할부 값을 계산하며 이틀 동안 강의를 끝내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적처럼 핸드폰이 용산분실물센터에 와 있다는 친구의 이메일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주워 간 사람을 욕하고 기사를 원망하고 세상을 탓하는 동안 내 핸드폰은 익산까지 갔다가 용산에 와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핸드폰은 화장실이 아니고 기차에서 잃어버린 것이었다. 핸드폰을 주운 사람은 어떻게 돌려 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계속 울려대는 내 전화기 속 카톡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핸드폰을 주웠다고 알렸고 카톡방 친구들은 그 사람과 몇 번에 걸친 통화 끝에 익산까지 간 핸드폰을 다시 용산분실물센터로 가져다 놓았다.
또 한편으로 나를 태워다 준 기사도 계속 전화를 해서 주운 사람과 통화를 하고 내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결국 카톡방 친구들과 기사님, 그리고 주운 분의 합동작전으로 핸드폰은 우여곡절 끝에 내게로 돌아왔다.
용산역에서 핸드폰을 건네받는 순간 나는 한 자루의 촛불이 내 안에 밝혀지는 걸 느꼈다. 그는 나에게 핸드폰과 함께 뜨겁고 환한 그 무언가를 건네 준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다.
찜질방에 가면 ‘핸드폰 도난 조심! 꼭 로커에 넣고 주무세요!’라고 커다랗게 써져 있다. 불신에 가득 차 있는 세상이지만 세상 속엔 여전히 선의를 실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른다. 그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나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세상엔 핸드폰보다 중요한, 꼭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핸드폰과 함께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을 그 사람을 통해 찾았다. 세상에 대한 따듯한 희망을! 사랑은 사랑으로 물이 든다.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촛불을 밝히듯 두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용산역 광장에 서있었다. 참 오랜만에 내가 사는 세상이 살맛나 보였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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