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는다
不憤不啓 不不發(불분불계 불비불발)
- 《논어(論語)》 중에서"
유가(儒家)의 가르침을 담은 책들을 살펴보면 맨 앞에 가장 중요한 핵심 키워드를 배치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들이다.
‘논어(論語)’의 첫 문장은 ‘學而時習之 不亦悅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다. 배우고 익히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말하고 있다.
‘맹자(孟子)’의 첫머리는 ‘의(義)와 리(利)’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맹자를 만난 양나라 혜왕이 ‘우리나라에게 이익(利)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묻자 맹자는 “이로움을 말하기 전에 올바름(義)을 말하라.”라고 일갈한다. 공부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소학(小學)’은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率性之謂道(솔성지위도) 修道之謂敎(수도지위교)’로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바른 이치(天命)를 지니고 태어났으며(性), 이를 잘 따르는 것(率性)이 올바른 길(道)이고 그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가다듬는 것(修道)이 공부(敎)라고 말하고 있다.
‘대학(大學)’의 첫 문장은 ‘大學之道(대학지도) 在明明德(재명명덕) 在親民(재친민) 在止於至善(재지어지선)’이다.
본래 지니고 있는 올바름을 명확하게 밝히고(明明德) 모든 사람들과 화합하여(親民) 최고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止於至善)이 공부의 길(大學之道)이라고 강조한다.
나 하나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중간에 적당한 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최고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하는 것이 공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논어(論語)’에 나오는 ‘不憤不啓 不不發(불분불계 불비불발)’에서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게 있으면 이를 답답하게 여기고 결국 화가 치밀어 올라 분하게 여기며 씩씩거리는 순간을 경험해야 한다. 그런 상태가 되지 않으면(不憤) 나는 가르쳐주지 않는다(不啓).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데 정리가 되지 않아 더듬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순간을 경험해야 한다. 그런 상태가 되지 않으면(不) 나는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不發).”
여기서 유래된 말이 계발(啓發)이다. 공부는 남을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다. 100점을 맞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명확하게 이해하여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알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그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치기 직전이 된다.
그 간절함이 극에 달하면 결국 실마리가 보인다. 그럴 때 스승이 곁에서 손가락 하나로 슬쩍 건드려만 주어도 간절한 학생의 입에서는 탄성이 쏟아진다. “아! 바로 이거야!” 그 순간의 기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간절하면 얻을 수 있다. 곁에 공자가 없더라도 가능하다. 절박하면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답답함과 그 답답함의 해소가 순차적으로 이어지면 답답함도 오히려 기쁨이 된다. 곧 불꽃이 터지는 것처럼 깨닫게 된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學而時習之 不亦悅乎’가 가능해진다.
이것을 체험한다면 자기계발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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