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베어줘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친구사이”
친구라도 그 친한 정도에서는 차이가 있다. 진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 가운데서도 목숨까지 내어 줄 수 있는 사이는 드물다. 목숨까지 내어 줄 정도로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사이나 그런 친구를 ‘문경지교’라고 한다.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하 목현(繆賢)의 식객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빼앗길 뻔했던 천하 명옥(名玉)인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원상(原狀)대로 가지고 돌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上大夫) 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3년 후, 혜문왕을 욕보이려는 소양왕을 가로막고 나서서 오히려 그에게 망신을 주었다. 인상여는 그 공으로 종일품(從一品)의 상경(上卿)에 올랐다. 그리하여 인상여의 지위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유명한 염파(廉頗)보다 더 높아졌다. 그러자 염파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싸움터를 누비며 성(城)을 쳐서 빼앗고 들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 밖에 놀린 것이 없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 놈을 만나면 망신을 주고 말테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다. 그는 병을 핑계대고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멀리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돌아가곤 했다. 이 같은 인상여의 비겁한 행동에 실망한 부하가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그러자 인상여는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염파 장군과 진나라 소양왕과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물론 소양왕이지요.”
“나는 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소양왕을 혼내 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찌 염파 장군 따위를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가 쳐들어오지 않는 것은 염파 장군과 내가 버티어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고 염파 장군을 피하는 거야.”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는 곧 ‘웃통을 벗은 다음 태형(笞刑)에 쓰이는 형장(荊杖)을 짊어지고(사죄의 뜻을 나타내는 행위)’ 인상여를 찾아가 섬돌 아래 무릎을 꿇었다.
“내가 미약해서 대감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 어서 나에게 벌을 주시오.”하고 염파는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고 한다.
〈벨 문(刎) / 목 경(頸) / 어조사 지(之) / 사귈 교(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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