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마음은 잘 보이지 않는다
道心惟微(도심유미)
- 《서경(書經)》 중에서"
유학(儒學)의 경전에 나오는 글을 자세히 읽다보면 대부분 두 가지를 비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을 만들어냈다는 음(陰)과 양(陽)이 그렇고 성리학의 이(理)와 기(氣) 또한 그렇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설명도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으로 설명한다.
‘사람의 마음(人心)은 위태롭고 올바른 마음(道心)은 잘 보이지 않는다(人心惟危 道心惟微).’는 문장은 ‘서경(書經)’에 등장하는 순(舜)임금의 말이다.
‘인심유위 도심유미(人心惟危 道心惟微)’라는 문장 구조를 잘 살펴보면 순임금의 생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인심(人心)-도심(道心)’ 그리고 ‘위(危)-미(微)’가 대응을 이루고 있다.
흔히 인심은 사사로운 욕심을 이야기하고 도심은 올바른 마음이라고 말한다. 대응 구조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위태로움(危)과 눈에 잘 보이지 않음(微)’은 조금 복잡하다. 위태로움은 안전함 혹은 편안함과 대응을 이뤄야 할 듯 보이고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은 눈에 확연하게 잘 보이는 큰 것으로 비교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앞의 문장을 정리해보자.
■ 긍정적인 것 - 도심, 올바름을 추구하는 마음, 편안함, 눈에 잘 보이지 않음.
■ 부정적인 것 - 인심,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위태로움, 눈에 잘 보임.
눈앞에 있는 이익은 잘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미래의 것이기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꽃과 나무는 눈에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점점 커가는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 엄청 자라났네?’ 하고 놀라며 바라본다. 매일매일 눈으로 보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자전하는 지구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간다. 추워지고 더워지면 어렴풋이 느낀다. 어두워졌다가 환해지면 짐작한다. ‘지구가 움직이는구나.’
부모님의 사랑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간다. 나를 혼내면 미워하고 맛난 것을 주면 기뻐한다. 그러다가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어렴풋이 느낀다. ‘부모의 사랑이 나를 키웠구나.’
‘나’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나는 이익을 보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공익을 생각하는 게 도심이다. 그러면 편안해진다. 행복해진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아야 한다. 부모의 마음, 자식의 마음, 이웃의 마음, 나무의 마음, 땅의 마음을 보려면 관심과 사랑을 갖고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게 도심(道心)을 발견하여 그것을 따라 용맹스럽게 전진하면 ‘빛을 되찾는’ 광복(光復)이 된다. 사사로운 내 이익만 추구하던 어둠 속에서 해방되어 모두가 함께 편안해지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광복은 지난 역사이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가 해결해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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