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5 격주간 제835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포탄에 꽃을 꽂아주다
나는 포탄 더미에 꽃을 꽂아주었다. 전쟁의 마침표처럼.
여행을 하면 뜻밖의 장소에서 현실을 직면할 때가 있다.
얼마 전 방학을 한 초등학교 아이들과 시도 쓰고 놀기도 하는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 캠프에 다녀왔다. 행사장은 충청도 농촌마을이었는데 ‘소리지도 만들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도시 아이들에게 시골 밤, 어둠이 말하는 소리를 공책에 적게 해 오감을 열어주는 시간.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뒤 언덕길을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펑! 펑! 대포 소리가 나면서 앞산이 흔들린 건.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나는 타이어 터지는 소리라고 둘러댔지만 소리는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건 분명 대포 소리였다.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언덕 위에 있는 과수원의 새 쫓는 소리였다. 요즘 시골에선 그로 인해 이웃과 싸움이 나고 관공서에는 대포 소리를 금지해 달라는 민원이 쌓인다고 한다. 같은 문제로 캐나다에선 ‘대포 소리 금지’라는 피켓을 들고 데모도 한다고 하니, 이건 또 다른 새들과의 전쟁인 것이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새는 있었고, 새는 먹고 살아야하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변해간다. 신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웃 사람이 불안에 떨든 귀마개를 하고 살든 깊이 생각 할 겨를이 없다. 허수아비를 세우고 깡통을 매달던 시절에 우리 할머니는 노래로 새들을 쫓았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옛 사람들은 가난해도 여유와 해학이 있었다. 새들도 지금처럼 영악하진 않았던 것 같다. 모든 게 상대적이니까.
옛 사람들은 새를 공존해야 할 골칫거리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생각처럼 무서운 건 없다. 노래를 잊고 무기를 드는 사람들.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만들지만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진정한 진보란 공존의 철학에서 온다.
아이들이 쓴 글 속엔 귀뚤귀뚤, 개굴개굴, 그리고 펑!펑!도 들어 있었다. 평화로운 시골마을을 뒤흔드는 폭발음. 나는 그 소리를 아이들에게서 빼고 싶었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을 온 나그네처럼 밤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경기도 화성군에 있는 매향리를 다녀온 적이 있다. 매향리는 6.25한국전쟁 때부터 미군의 폭격훈련장이었다. 전투기가 지붕 위를 날아다니며 55년 동안 하루에 11시간씩 기총사격을 하고 폭탄을 떨어뜨리던 곳. 많은 사람들이 죽고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한 곳. 그곳에 쌓여있는 수많은 포탄과 탄피의 잔해는 끔찍한 과거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 속 고요한 농촌을 울리는 대포 소리는 불현듯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절감하게 했다. 우리가 싸우지 않고 잠든 날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벌써 휴전이 된 지 63년째다.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평화는 어디 있는가? 아이들 그림책에서 보았다. 평화란 전쟁을 하지 않는 것.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 내가 태어나기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
매향리도 이젠 미군이 철수한 지 11년이 됐다. 폭음만 가득했던 그곳에 국내 최고 시설의 유소년 야구장과 평화생태공원이 조성되고 갯벌도 살아나고 있다. 나는 포탄 더미에 꽃을 꽂아주었다. 전쟁의 마침표처럼.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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