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동 현 회원(서산 서일고4-H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동아리 활동을 정하는 시간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4-H에 가입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입한 4-H부서는 ‘그린반’이었다. 봉사활동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동아리 시간만은 직접 내가 농부가 되어 농작물을 재배하고 꽃도 기르는 활동이 맘에 들어서였다. 동아리 시간 첫날에 선생님이 우리를 불러서 학교 뒤쪽에 있는 사각형 모양으로 콘크리트를 깨놓은 것 같은 곳으로 데리고 가셨다. 선생님은 절대로 식물이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이 환경에서 우리가 앞으로 방울토마토, 수박, 참외, 상추 등을 심을 것이라고 하셨다. 정말로 흙 반, 돌 반인 밭 같지도 않은 곳에서 농사를 지으실 생각을 하시다니, 처음에는 선생님이 농담을 하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일 뿐, 우리는 곧바로 밭에 있는 돌을 걸러냈다. 몇 주 동안 돌만 걸러 내었지만, 돌은 끝없이 나와서 선생님이 우리들 몰래 돌을 더 넣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장난도 주고받았다. 햇볕이 매우 강했는데 그 날씨에서 돌을 주우려니 죽을 맛이었다. 드디어 한 달 동안 돌만 걸러내 겨우 밭에 있는 돌을 대부분 걷어 낼 수 있었다. 돌들을 다 걸러내니 흙이 있는 사각형의 텃밭이 밭이 아니라 사막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뒤이어 비료포대를 창고에서 가져와서 비료를 섞었다. 비료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우리는 그 비료들을 밭 앞에서 쏟아서 삽으로 섞었다. 돌 걸러내는 것 보다는 훨씬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비료를 밟아서 하루 종일 비료냄새에 시달리고 살아서 힘들기도 했다. 우리는 섞은 비료를 가지고 밭으로 가서 밭에 있는 흙에다 비료를 뿌리고 흙과 비료를 섞는 작업을 했다.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삽을 들고 비료를 섞으니깐 온몸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비료를 다 섞으니 선생님께서는 이제 밭에다 고랑을 파야 한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흔히 밭 하면 생각나는 고랑이 파기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깐, 정말 힘들었다. 더운 것도 더운 것이지만, 허리를 숙이고 삽질을 하며 흙을 쌓는 작업이 여러 명이 같이해도 빨리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하니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던 선생님이 도와주시긴 하셨지만, 우리 힘으로 밭에 고랑을 파니깐 기분이 좋았고 뿌듯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농사를 지으시거나, 농부들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농작물을 재배한다고 생각하니깐, 그 날 먹은 저녁급식의 쌀 한 톨이 정말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고랑을 다 파고 나니 이젠 제법 나름 ‘밭’ 같다는 느낌이 났다.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씨를 뿌리는 날이 왔다. 씨를 뿌리는 일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호미로 땅을 살짝 판 후 씨를 뿌리는데 허리가 아팠다. 하지만 이 씨앗들이 우리가 먹을 채소가 된다고 생각하니 그런 아픔쯤은 견딜 수 있었다. 선생님은 씨를 다 뿌리고 나서 제일 중요한 일이 물을 뿌리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매일 점심시간에 텃밭으로 가서 물을 주었다. 물을 주면 땅이 물에 젖는데 그걸 볼 때마다 우리가 심은 토마토, 상추, 쑥갓, 수박, 고추가 잘 자랄 것 같았다. 처음에는 황무지였던, 아무것도 자랄 수 없을 것 같던 땅을 우리 손으로 가꾸어서 이제 채소가 잘 자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물을 주고 있다니 정말로 신기하고 진짜 농부가 된 기분이었다.
비록 처음 지어보는 농사라 부족하고 모르는 점이 많아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하지 못하고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지만, 우리 모두가 같이 한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서로 화합하며 처음으로 지어본 농사가 우리에겐 참 뜻 깊은 시간을 가져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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