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5 격주간 제833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스스로에게 정직하라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게 성실함이다
誠其意者 毋自欺也(성기의자 무자기야)
- 《대학(大學)》 중에서"

올바른 삶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으로 완성된다. 목욕을 할 때, 우리 몸의 때를 씻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물 혹은 비누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물과 비누는 도울 뿐이다. 씻어주는 것은 내 손이다. 나 자신이다.
 내가 손을 움직여 몸을 문지르며 더러움을 씻어내야 한다. 내가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 물과 비누도 어쩔 수 없다. 내 손을 움직이는 것, 이것이 실천이고 성실함이다.
“올바른 길은 이제 아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세상은 아직도 혼란스러울까요? 연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실천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연구가 아니라 실천입니다.”
 율곡은 자신의 저서 ‘성학집요(聖學輯要)’의 저술을 끝낸 후, 이를 선조에게 올리며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를 동봉한다. 그러면서 편지의 마지막에 이런 문장을 덧붙였다.
 “바른 마음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거나, 현명하고 바른 인재를 찾아 일을 맡기지 않는다면, 이 책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실한 실천이 없다면 자신이 올린 책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대학자인 율곡이 이처럼 연구보다 실천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학(儒學)에서는 실천이 연구요 연구가 바로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이러한 것을 사람들이 외면하기 시작했다.
 입으로만 줄줄 외고 아는 척만 해도 출세에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율곡이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바르지 않은 것을 보면 악취가 나는 것처럼 느껴 거부하는 것, 올바름을 보면 마치 아름다운 여인을 본 것처럼 설렌 마음으로 선(善)을 따르는 것이다(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대학(大學)’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악취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이를 왜곡하여 향기가 나는 것처럼 행동한다. 타인을 속이기 위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바르게 행동하고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바르지 않게 행동하는 것도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이게 습관으로 굳어지면 악취가 나도 이를 악취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를 속이면서 거짓으로 행동하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자신은 완벽하게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부자연스러운 모습과 행동이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물속의 물고기는 물 밖에서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환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마음속 생각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게 된다.
 증자(曾子)가 “온 세상이 나를 보고 있고 온 세상이 나를 가리키고 있구나,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고 있다면 실천해야 한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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