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 언 회원(전국대학4-H연합회)
재학 중인 천안연암대학 연암해외연수 장학생에 선발된 나는 10개월간의 연수를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의 근교 도시인 카르벤(Karben)에 위치한 농장에 오게 됐다.
독일은 농업을 꼭 지켜야 할 삶의 근간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국토 중 절반 이상인 약 90만ha를 농경지로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EU 중 가장 큰 농업 생산국이 됐다.
또한 농업의 생산적인 기능만으로 농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2차, 3차 농업을 활성화 시켜 이곳에서 얻어진 이익을 1차 농가로 순환하는 6차 농업을 하고 있다.
내가 연수하게 된 독일의 농장도 6차 농업을 하고 있다.
나의 꿈은 유기농산물을 이용한 가공식품사업가다. 막연했지만 중학교 2학년 사춘기 시절 가슴을 뛰게 했던 농업이라는 존재는 지금까지의 나를 있게 했다. 귀농하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시작됐던 꿈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춘기 소녀의 가슴을 뛰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4-H회 활동을 통해 꿈을 키우고 천안연암대학 친환경원예과에 진학하게 됐다.
하지만 나의 꿈은 농학이 아닌 진짜 농업현장에서 필요한 일들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학과에서 진행하는 해외연수와 지·덕·노·체 이념으로 농심함양운동을 장려하는 4-H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시야 넓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약 10개월간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 또한 놓치지 않았다.
농업기술이라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높은 수준의 기술을 배울 수 있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만이 아닌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을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차를 타고 먼 산을 그저 지나가듯 보면 별 감흥이 없지만 어두운 터널을 지나 빛과 함께 멀리 보이는 산을 봤을 때 비로소 그 산의 진가를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한국 안에서 살면 보이지 않지만, 외국에 나가서 우리나라를 봤을 때 우리 농업의 현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제3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그 현실을 보고 싶었고 그에 대한 나의 시선을 넓히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히 독일행을 결심하게 됐다.
처음 도착한 독일은 그저 신기하고 새롭고 설렘만 가득했다. 하지만 여행과 삶은 차이가 있듯이 예상치 못한 일들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름 농대생이라고 내가 독일에 와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가장 큰 착각이었다.
내가 독일에 처음 와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청소밖에 없었다. 청소하러 독일에 갔느냐 하겠지만 청소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내 위치였고 현실이었다. 순간순간 실망했고 답답했지만 그 현실을 인정하고 변화를 다짐한 순간부터 나 자신의 변화는 시작됐다. 점점 시키는 일이 아닌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이 힘들지만 고생한 몸을 보상해 주는 보람이 포기를 잊게 만들었다. 처음 실망했던 나의 모습은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농업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물만 재배하는 것이 아닌 산업으로 보는 농업이 부족했던 것이다. 생산·가공·서비스를 포함한 6차 산업에는 보이지 않는 곳곳에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막연했던 처음보다 조금은 달라진 생각이 아닐까 한다. 보이는 것 뒤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혜안을 만드는 훈련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서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을 꿈꾸는 것. 9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어느새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농업으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꿈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나의 20대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리게 될 그림을 상상했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인류의 삶은 농업으로부터 시작돼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농업은 아주 오래된 미래’다. 그리고 나는 억세게 운이 좋게 그 속에 들어와 있다. 바로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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