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5 격주간 제831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가득 채워야 흘러넘친다
盈科而後進(영과이후진)
- 《맹자(孟子)》 중에서"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런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럴 때 좌절하기 쉽다. 스스로의 능력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하며 자신을 나무라거나 자신을 몰라보는 세상을 탓하며 주저앉아 버린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시기를 이겨내야만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급하여 서둘게 되면 다리가 꼬이기 마련이다. 마음과 몸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빨리 이루고 싶은 마음에 몸을 무리하게 움직이면 탈이 난다.
“내가 예전에 동안(同安)이라는 마을에 머물 때의 일이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종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종소리를 들을수록 내 마음이 조급해졌다. 종이 한번 울린 뒤에 그 다음 종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다음 종소리는 언제 울릴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이 한번 울릴 때마다 초조해졌다. 왜 그럴까? 깊이 생각해본 결과, 종이 울리면 내 마음이 먼저 달려가 그 다음에 울릴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소리 하나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 다음 종소리를 향해 달려갔다는 뜻이다. 이때에 나는 깨달았다. 학문을 하는 것도 이러하구나! 지금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서둘러 다음을 기대하고 먼저 미래를 기웃거리면 안 되는 것이로구나! 지금 현재에 충실해야 그 다음도 있는 것이로구나!”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나오는 주자(朱子)의 고백이다. 성과를 향해 달려가지 않고 성과가 스스로 나에게 다가오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율곡은 공부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를 아홉 가지로 구분해 ‘구용(九容)’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바로 ‘족용중(足容重)’이다. 발걸음을 무겁게 하라, 조급하게 서둘지 말라는 뜻이다. 게으르게 하라는 뜻이 아니다.
“산골짝 샘물을 보아라. 보이지 않는 깊은 땅 속에서 조금씩 흘러나와 근처의 모든 땅을 적시고, 오목한 웅덩이들을 모두 가득 채운 후에야 겉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흘러내려 앞으로 나아가 바다까지 도달한다(盈科而後進 放乎四海). 그러나 여름철 소나기는 어떠한가. 미친 듯 쏟아져 세상을 다 삼켜버릴 것처럼 보이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땅속으로 모두 스며들어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말라버리고 만다. 진정 부끄러운 것은 무엇인가. 명성을 날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치게 부풀려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聲聞過情 君子恥之).”
맹자의 비유는 매우 명쾌하다. 산속 샘물은 졸졸 흘러 그 위세가 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다르다. 주변 모든 곳을 다 가득 채운 후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나기는 갑자기 쏟아져 그 위세가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채우고 나면 바싹 말라 금세 초라해지고 만다.
우선 나와 내 주변을 가득 채워야 한다. 가득 채우는 것에만 집중하면 보너스로 흘러넘침이 주어진다. 반대로 흘러넘침에 집중하면 어떻게 될까. 조급함을 이기지 못해 그릇을 넘어뜨려 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금방 말라버리게 된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가 아니라 남이 나를 알아줄 때 조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시작하면 깜짝 놀라며 두려워하라. 혹시 기울어져 흘러내린 것은 아닌지, 금이 가서 새어 나온 것이 아닌지.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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