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5 격주간 제831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가다
나는 이곳에서 맑은 샘물 마시듯 사람의 마음을 마시고 목을 축인다.

나는 일 년에 한 번 공짜 여행을 한다. 서울에서 경남 고성까지 왕복 버스비 무료, 1박2일 동안 재워주고 먹여주고 밤새 놀다가 떠나올 땐 점심까지 차에 실어주는 여행. 나는 친정에 가듯 그곳엘 간다.
그곳에선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시상식이 열린다.
계간 ‘열린아동문학’ 시상식인데 해마다 당선된 동시, 동화 작가에게 상금 외에 이불, 침대 커버, 방석, 고추장, 참기름, 술, 양파, 마늘, 쌀, 상, 파프리카, 도자기찻잔, 십전대보탕 등 선물이 너무 많아, 차가 없으면 선물을 가져갈 수 없는 시상식. 올해로 6회째인데 처음엔 그냥 산속에서 시상식을 하고 마당에 솥단지를 걸어 국밥을 끓여 내고 마을의 집이나 모텔 등에 흩어져 잠을 잤다. 그러나 이젠 이층 건물이 세워져 있다.
탈무드에선 음악, 풍경, 향기가 사람을 위로 한다고 한다. 동시동화의 숲은 경남 고성 대가면 아름다운 산속에 있다. 나무에 매달린 종은 바람을 연주하고 비 그친 앞산엔 안개가 흐르고 6월의 밤꽃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위로 받는 건 그곳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그곳엔 우정으로 세상을 바꾼 주인공, 배익천 선생과 홍종관 선생과 그의 부인 박미숙 선생이 있다. 그들로 인해 한국 아동문학의 미래가 바뀌었다.
25년 전쯤 부산에서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작됐다. 당시 동화작가로서 MBC 방송국에 다니며 부산문인협회 사무국장을 하던 배익천 선생이 포장마차를 하던 홍종관 선생 부부를 만나게 된다. 영세했던 포장마차는 배익천 선생이 손님을 데려 오고, 상을 나르고 설거지까지 하면서 나날이 번창해 부산 광안리 3층짜리 횟집 〈방파제〉로 변했다. 그 다음엔 거꾸로 부부가 영세한 문학판을 돕게 된다. 계간 ‘열린아동문학’을 십년 넘게 익명으로 발간하고 재산을 털어 고성에 산을 사서 한국 아동문학의 산실을 만들고 있다. 세 분은 주말이면 고성으로 달려가 동시, 동화 작가들의 나무를 심으며 언젠가 세워질 아동문학관을 꿈꾼다. 배익천 선생의 꿈이 홍종관 선생 부부의 꿈이 된 것이다. 내 꿈이 너의 꿈이 되는 곳, 나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기적을 보러 그곳에 간다.
올해도 시상식이 끝나고 밤늦도록 마당에 앉아 뒤풀이를 할 때였다. 홍종관 선생이 사철가 한 자락을 구성지게 뽑아냈다. 노래 중에 가을 황국의 절개를 기리는 내용이 있었는데, 노래가 끝나자 배익천 선생이 말했다. 내년엔 이곳을 국화 밭으로 만들 거라고. 춘추전국시대 거문고의 달인 백아가 달빛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뜯으면 그의 친구 종자기는 달빛을 바라보았고, 백아가 강물을 생각하면 종자기도 강물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거문고로 대화하는 그들처럼 두 분도 노래로 서로의 심중을 나누고 있었다. 어떤 풍경보다도 감동스러운 건 사람이 만들어내는 마음 속 풍경이다. 나는 이곳에서 맑은 샘물 마시듯 사람의 마음을 마시고 목을 축인다. 그리고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그들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돌아오는 길, 나희덕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새 떼가 날아간 하늘 끝/ 또는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 그 온기에 젖어/ 나는 오늘도 두리번거리다 돌아갑니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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