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단단하게 바닥을 다져라
須大做脚(수대주각)
- 《근사록(近思錄)》 중에서"
실패의 경험은 매우 아프다. 그래서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홀로 조용히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물론 역사를 살펴보면 몸을 숨기고 조용히 살아가는 현인(賢人)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은둔형 외톨이와는 확연히 달랐다.
흔히 강태공(姜太公)이라 부르는 주나라의 정치가 강상(姜尙)의 삶을 살펴보자. 그는 요순시대 주요 관직을 차지했던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서서히 몰락하여 그가 태어날 무렵에는 천민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나마 명문가 출신이라는 것을 높이 생각해준 어느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행운을 잡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영양가가 없다고 판단한 처가는 싸늘하게 등을 돌리며 그를 내쫓아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는 하층민의 생활을 이어간다. 그저 바닷가에서 낚시만 하며 조용히 지내던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오해다.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밥장사도 하고 도살업에도 종사했다. 상점 종업원으로 들어가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현실감각을 키운 그는 상나라의 수도로 들어가 술집을 열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명문가 출신으로 학문도 익혔고 몰락한 이후에는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현실감각을 익혔다. 술집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세상을 읽었다. 그가 술집을 경영하며 ‘용한 점쟁이’로 소문이 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용한 점쟁이’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상나라의 주왕(紂王)이 그를 불러 곁에 두기도 했다. 주왕이 누구인가. 폭군의 전형으로 상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최악의 임금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주왕을 가까운 곳에서 본 강상은 상나라의 몰락을 예감하고 주왕 곁을 떠난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아가 많은 인재들과 교류를 시작한다.
잠시 궁궐에서 근무했다는 이력은 그에게 더 많은 인재들과 만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계획을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는 홀연히 조용한 바닷가로 사라져 낚시를 즐겼다. 누군가 영웅이 나타나 자신의 소문을 듣게 된다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결국 기회는 찾아왔다. 주나라 문왕(文王)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강상의 나이가 70이 넘었을 때였다. 그는 문왕의 스승이 되었고 이후 무왕(武王)을 도와 상(商)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다.
“뜻은 크게 갖고, 실천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공부할 때에는 머리와 입으로만 하지 말고 직접 실천하여 몸으로 익히는 게 있어야 한다. 바로 코앞만 보지 말고 넓고 크게 멀리 시야를 넓혀라. 그러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초가 필요하다. 비유하자면 9층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높이 올라갈 것만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높은 건물을 지으려면 반드시 넓은 터에 단단한 기초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譬如爲九層之臺 須大做脚).”
‘근사록(近思錄)’에 나오는 말이다. 크게 실패했을 때, 웅크리면 안 된다.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현실감각을 익혀야 한다.
가만히 앉아 있다고 기회가 생기거나 깨달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교류하는 과정에서 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기초를 다지는 길이다. 은둔형 외톨이와 강상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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