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1 격주간 제828호>
원로지도자의 4-H이야기 ‘만경(萬頃)’⑦

한국4-H와 앤더슨(3)

연포(燕浦) 강 건 주 (한국4-H본부 고문)

앤더슨에게 제출된 만경생의 ‘한국4-H 전국확대 5개기본안’ 항목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한국4-H 지도전서(약 5만부) 발행과 각종 과제기술 안내서 10종(주로 가축 기르기, 위생, 토양과 비료 등) 발간
2. 4-H 민간지원단체 창설, 즉 4-H중앙위원회(현 한국4-H 본부) 창설
3. 단기 4-H지도자훈련, 농촌지도요원 포함
4. 과제물자 지원(주로 닭, 병아리, 새끼돼지, 토끼, 바느질감), 과제기록장과 소액 과제 지원금 등
5. 4-H경진대회 개최와 시상품 마련 등이었다.

우리는 1952년 5월, 4-H 전국확대의 전초적(前哨的) 행사로서 경기도 안양 종축장(노영환 장장)에서 수복지역 4-H연장부원(자원지도자 포함) 약 70명을 초청 ‘1일 4-H과제의 날’(토론과 실기연시로 수퇘지 거세-castration 방법, OEC소속 미군 소령 수의사 연시, 동사령부 교통편 제공, 종축장 점심 제공)을 개최, 현지 4-H인들 소리를 반영한 연찬을 개최함으로써 1952년 12월 농림부는 4-H운동을 청소년 주관 사업으로 책정한 것도 우연지사는 아니었다.
또한 제안된 5개 초안에 대해 사전에 농림부 관계 직원들과 충분한 토의를 거쳤던바, 앤더슨은 그에게 제출된 5개 건의 초안에 대해 극히 만족하여 “Good Boy, Wonderful!!”을 연발하던 그의 환하던 얼굴 모습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우리는 중앙의 건설적이고 종합적인 대4-H지원정책 수립을 위해 1954년 여름부터 ‘중앙4-H정책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농림부-행정지원, UNCACK-기술지원, 한미재단-재정/물자 지원, 한국4-H중앙위원회-민간지원) 한국4-H사업의 진로개척에 적극 상호 협조하기로 했다. 동시에 위에 제안된 5개 사업 추진안은 향후 2년간의 전국 4-H확대기본추진지침으로 채택하여 앤더슨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이로 말미암아 앤더슨은 미국 남부 6개주 4-H관계당국과 교회(감리교회와 북장로교회)에 호소하여 1955년과 1956년에 한·미 4-H우정의 기념비라 할 ‘미국4-H 한국지원 우정물자’를 다량 도입했던 일은 앤더슨의 생애 중 가장 보람 있었던 봉사였다고 그는 반복해서 언급했으며, 한국4-H는 이후 급속도로 전국에 확산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됐다.
1954년 늦은 여름에 첫 ‘한국4-H 지도전서-양면표지 노랑색’이 발행됐다. 당시 용지 마련은 만경생의 권유로 앤더슨이 서울 대방동 소재 미군용 신문 Stars & Stripes 지사에서 기증을 받았다.
4-H지도전서 편집은 김갑영 선생(과거 경기도4-H 지도원, 한국4-H노래 작사, 당시 농림부 촉탁 농사교도보 편집원)에게 위촉했는데, 김갑영 선생은 완성된 4-H지도전서 10권을 앤더슨에게 견본으로 제출하고자 UNCACK 사무실로 찾아오게 됐다. 김 선생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정중히 앤더슨 책상에 4-H지도전서를 올려놓았다. 4-H지도전서 한권을 집어든 앤더슨은 표지와 내용을 훑어보고는 난데없이 벼락같은 불호령과 함께 그 큰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이유는 책 표지를 녹색 대신 노랑으로 하고, 용지 기증자에 대한 감사 표현도 없고, 앤더슨의 사진과 축사가 누락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김 선생은 기절초풍,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자리를 물러섰다. 이후 보강된 제2판 4-H지도전서는 녹색 표지로 상장되어 1958년에 6만권이 출판(미국 경제원조처 지원)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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