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킨다
不戰而屈人之兵(부전이굴인지병)
- 《손자병법(孫子兵法)》 중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은 오늘 이 순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치열한 입시경쟁을 해야 하고, 학교를 벗어나면 취업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은 경쟁을 넘어 ‘취업전쟁’이라 부를 정도로 치열하다. 취업을 했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평생직장은 사라졌다. 살아남기 위해 계속 발버둥쳐야 한다. 평균 수명도 길어졌기에 이러한 경쟁은 노년기까지 이어진다.
이토록 끊임없는 경쟁과 전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존을 넘어 승리를 이어가는 방법은 없을까. 혼란의 시기, 춘추전국시대의 선배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중국 춘추전국시대(BC 8세기~BC 3세기)의 사상가들을 흔히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말한다. 공자(孔子), 묵자(墨子) 등 이름 뒤에 ‘자(子)’가 들어가는 사람들이 여럿(諸) 있었으며 그들을 따르는 무리(家) 또한 엄청나게 많았다(百)는 뜻이다. 당시 중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통일된 국가가 무너지고 여러 나라들이 만들어져 서로 경쟁을 하던 시기였다. 각 나라들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한 논의가 거듭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를 꿈꾸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사람들이 바로 제자백가(諸子百家)였다.
‘백가(百家)’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이 제시한 해법 또한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어렴풋하게 큰 줄기를 잡을 수는 있다. 매우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를 간단하게 구분해보면 ‘길게 멀리’ 내다보느냐 아니면, ‘바로 지금’을 보느냐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상의 모태는 유가(儒家)였다. 유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사상은 유가의 사상을 비판하거나 확장시키며 생성됐다. 그러므로 유가를 잘 살펴보면 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유가에서는 ‘굳이 이기려고 하지 말라’고 말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조언은 매우 허무하게 들린다. 그러나 한걸음 더 들어가면 수긍할 수 있다. 이기려고 노력하지 말고 강해지려고 노력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무엇이 좌우하는가. 강한 자는 이기고 약한 자는 진다. 약하면서 이기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욕심일 뿐이다. 이기고 싶다면 강해져야 한다. 이기려고 꼼수를 부리고 얕은꾀를 내는 것은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 운 좋게 한두 번 정도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속가능한 승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나를 강하게 단련시키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길게 멀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제자백가 중에 병가(兵家)는 조금 다르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강점과 약점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그 미묘한 차이를 파고들어 승리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손자병법(孫子兵法)》이다. ‘바로 지금’의 해법을 제시한다.
얼핏 보면 뿌리부터 다른 사상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유가의 가르침과 유사한 면이 참으로 많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를 머리에 떠올려 보자. 왜 위태롭지 않을까. 내가 상대보다 약하다는 판단이 서면 덤비지 않기 때문이다. 백전백승(百戰百勝)이 아니라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점에 주목하라. 오히려 “백전백승은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 최선이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말한다. 약하면 싸움을 피해야 한다. 강하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강구해야 한다. 결론은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다. 강하면서도 올바르다면 더욱 더 싸울 필요가 없다. 상대가 스스로 굴복하거나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진정한 승자는 싸워서 이긴 사람이 아니다. 강하고 바른 사람이 진정한 승자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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