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01 격주간 제826호>
[영농현장] “명퇴 걱정 없는 보람있는 평생직장 찾아 귀농”

김 정 훈 회원 (경북 김천시4-H연합회)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농업인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선뜻 좋은 평가 내리기를 주저한다. 여기에 당당히 맞서 농업의 블루오션을 찾아 나선 젊은이가 있다. 바로 경북 김천시4-H연합회 김정훈 회원(32)이다.
봄빛에 눈이 부신 날, 김천들녘에서 만난 김 회원은 “명퇴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귀농했다.”고 했다. 지난 2007년에 귀농해 현재 8300㎥의 하늘천연농조합법인 2000㎥의 재배사에서 표고, 노루궁뎅이, 영지 등을 재배해 연 5000여만원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12년에 결혼해 5살짜리 아들을 두고 행복한 삶을 일구고 있다.
김 회원은 이곳 김천시 조마면 삼산리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마치고 구미에서 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전공도 전자공학을 전공해 모 대기업의 해외서비스팀에서 2년간 근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예퇴직을 앞둔 부장님의 한숨소리를 듣게 됐다. 부장님은 “내가 평생 해온 일이 이건데, 회사를 그만두면 무얼 하겠느냐?”며 걱정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김 회원은 생각했다. 남의 일이 아닌 몇 십 년 후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퇴직 걱정 없이 보람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김 회원은 결국 귀농을 결심하게 된다. 사직서를 받은 회사 측에서는 몇 번에 걸쳐 상담까지 하며 만류를 했다. 부모님의 반대는 더 컸다. 남들은 들어가기 힘든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자리까지 잡았는데, 그만두겠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김 회원은 귀농 후 자신의 진로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설득에 나섰다. 마침 웰빙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였다. 도시민을 대상으로 한 도시농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변의 반대를 이겨내고 농업인이 되었지만, 결혼을 앞두고 처갓집의 반대에 또 부딪혔다. 장인이 직접 농장까지 와 보고서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김정훈 회원은 지역의 4-H선배이자 멘토인   이기양 경북4-H본부 회장(왼쪽)을 찾아 조언을 듣기도 한다.
영농에 정착한 김 회원은 특화된 작목으로 버섯을 택했다. 전문지식을 갖기 위해 많은 교육을 받았고 우수 농장들을 찾아다녔다. 이때 느낀 것이 농업인들은 오랫동안에 걸쳐 얻은 기술을 자신만의 노하우로 알고 이전하기를 꺼린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김 회원은 지금 자신의 농장에 교육장을 만들어 농업기술을 나누고 공유하며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김 회원은 자신이 영농에 정착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 4-H였다고 말한다. 자신과 같이 흙에서 꿈을 찾는 젊은이들을 4-H에서 만났다. 작목이 달라도 각자 하는 영농에서 장점을 찾아 자신에게 접목할 수 있었다. 2009년도에 김천시4-H연합회에 가입해 김천시4-H연합회장, 경상북도4-H연합회 감사와 정책국장으로 활동하며 리더십을 길렀다.
김 회원은 또 4-H에서 해외연수를 다녀온 것이 값진 체험이었다고 한다. 해외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가 아니라 더 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자신이 4-H에서 받은 혜택을 언젠가는 후배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김 회원은 농촌의 많은 젊은이들이 4-H에 가입하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다. 이들이 4-H회에 가입할 여건과 활동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젊은 영농인들의 새로운 영농기술 아이템을 적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줄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농업에서 평생직장을 찾은 김정훈 회원은 사회단체 기부도 몇 년째 계속 하고 있다. 이 지역의 4-H선배이자 멘토인 이기양 경북4-H본부 회장을 찾아 조언을 듣기도 한다. 김 회원이 제2의 이기양, 아니 더 큰 지역사회의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할 것을 기대해 본다.  
〈조두현 사무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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