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君子同而異(군자동이이)
- 《주역(周易)》 중에서"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인생이 잘 풀린다. 회사에서도 좋은 인재를 발탁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발전을 이루게 된다. 성실하고 바른 친구를 만나면 나 자신도 그 친구를 따르게 된다. 반대로 게으르고 비뚤어진 친구를 만나면 나도 그렇게 변해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문이 든다. 매우 상식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상한 구석이 눈에 보인다. 타인에 대한 판단만 있지 나에 대한 판단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다. 나는 흑도 백도 아닌 회색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만약 내가 좋은 사람이며 착하고 바른 사람이라면?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상황은 좋아질 것이다. 그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면 더욱 발전할 것이며 그렇지 않고 비뚤어진 사람이라면 나로 인해서 그 사람이 바르게 변화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나를 바르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나 이것은 동등한 입장에서 만났을 때를 말한다. 동등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동등한 입장의 개인과 개인이 만나는 게 아니라 거대한 조직과 개인이 만났을 때, 권력자와 평범한 개인이 만났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힘이 세고 난폭한 폭력배와 함께 아무도 없는 방에 있다고 생각해보라. 내가 아무리 선하고 바르다 해도 그의 명령에 반항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유학(儒學)을 공부하던 선배들은 먼저 나를 바르게 가다듬는 것과 함께 바르고 착한 친구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바르게 판단하여 선택하기 때문에 그렇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기억하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르게 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왕과 나의 관계이다. 왕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가까이에서 그를 돕거나 아니면 멀리 떠나가는 정도만 선택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진퇴(進退)다. 어질고 현명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을 용현(用賢)이라 하는데 이는 왕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용현(用賢)은 바로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선거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율곡이 왕에게 올린 ‘용현(用賢)의 지혜’를 이제는 우리도 읽어야 한다.
율곡은 선조에게 올린 ‘성학집요(聖學輯要)’ 용현(用賢) 편에서 ‘주역(周易)’에 나오는 ‘군자는 같으면서도 다르다(君子同而異).’라는 말을 언급한다. 현명한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일 때 다르다는 의미를 지닌다. 율곡의 말을 들어보자.
“바르고 현명한 사람의 행동은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식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부모에게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효도라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임금을 존경하는 것은 같지만 임금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곁에서 돕고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또한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점입니다. 만약 임금이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고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면 모든 직책과 명예를 내려놓고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점입니다. 부모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더라도 곁에서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그저 부모의 뜻만 따르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임금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더라도 그저 칭찬만 일삼아 나라를 바르지 못한 곳으로 가도록 내버려두고 더 나아가 바르고 현명한 사람들이 궁궐을 떠나 숨어버리게 만들고….”
율곡은 임금에게 ‘밝은 눈으로 사람을 제대로 선택하라.’고 간곡하게 요청했지만 묵살당하고 말았다. 율곡은 오늘, 선거권을 지닌 우리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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