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5 격주간 제825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원칙과 변칙

"예는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禮以順人心爲本(예이순인심위본)
- 《순자(荀子)》 중에서"

어떠한 경우라 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원칙에서 벗어나 원칙과 다른 변칙을 적용하여 대응하는 사람이 있다. 두 사람 중에 과연 누가 올바른 사람일까. 얼핏 생각하면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더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유가(儒家)에서는 상도(常道)와 권도(權道)로 구분하기도 하는 원칙과 변칙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격렬한 논쟁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왔다. 공자와 맹자가 활동했던 춘추전국시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학자와 논객들이 가장 많이 모여 북적이던 곳 중에 하나가 바로 제나라가 설립한 ‘직하학궁(稷下學宮)’이었다. 제나라는 이곳에 천하의 학자들을 초대하여 자유로운 토론과 연구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맹자가 제나라를 방문했을 때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우곤(淳于)도 바로 직하학궁에서 최고라 손꼽히던 논객이었다. 유가 최고의 논객으로 손꼽히던 맹자와 직하학궁 최고의 논객 순우곤이 만나 나눈 이야기의 주제도 바로 원칙과 변칙, 상도와 권도 문제였다.
순우곤이 맹자에게 “남자와 여자가 서로 물건을 주고받을 때에도 직접 신체를 접촉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하셨죠?”라고 묻자 맹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순우곤이 다시 질문을 한다. “그러면 형수님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형수를 잡아 구해주는 것도 예에 어긋나는 것이겠군요?”
유가의 허례허식, 과도한 원칙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 대답한다. “물에 빠진 형수를 구해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지요. 남녀가 물건을 주고받을 때 직접 손을 맞대지 않는 것은 예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잡아서 건져주는 것은 권도(權道)입니다.”
어느 한쪽에 매이지 않고 때에 따라 적절히 해야 한다는 유가의 ‘시중(時中)’ 개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순우곤이 아니다. “지금 천하의 사람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정치일선에 나아가 현실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올바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까?”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일을 하다보면 손에 피도 묻게 되고 더러운 물에 몸을 적셔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은 하지 않고 왜 비판만 하고 있느냐고 순우곤은 말한다. 맹자에 대한, 아니 유가 전체에 대한 순우곤의 공격인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천하가 물에 빠지면 정도(正道)와 원칙(原則)을 통해 구해야 하고,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으로 잡아 구해야 합니다.”
원칙과 변칙, 상도와 권도에 대한 맹자의 명쾌한 답변이다. 그렇다면 유가가 말하는 원칙과 상도는 무엇인가. 하나의 불변하는 원칙이 아니라 여러 상황 가운데 더 나은 상황을 선택하는 것이 유가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따른 공포를 이기지 못해 정신없이 날뛰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행동하는 길을 고민했다. 죽은 사람을 그냥 내다 버리는 것과 예의를 갖춰 단정하게 처리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사람다운지 고민했다. 사회적 약자를 그냥 방치하는 것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사람다운지 따져 봤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道)’을 찾는 게 원칙이다.
예(禮)도 마찬가지다. 고정 불변하는 확고한 원칙이 아니다. 그저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다. “예는 호화로움이 아니라 꾸밈없이 수수한 것이 낫다(禮, 與其奢也寧儉).”는 공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순자(荀子)는 더욱 명확하게 말했다. “예는 사람 마음을 따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예의 경전에 특별한 언급이 없더라도 사람의 마음에 따르면 모두 예이다(禮以順人心爲本, 故亡於禮經, 而順人心者, 皆禮也).”
원칙과 변칙을 따지기 전에, 나는 과연 사람다운 마음을 지녔는지 먼저 살펴보자. 그것이 원칙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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