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01 격주간 제824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절제의 미학

"편안할 때에도 위기를 생각하라
安而不忘危(안이불망위)
- 《주역(周易)》 중에서"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는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나오는 말이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우며 개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왕권의 정통성을 알리기 위해 이성계의 고조부부터 앞으로 내세운다.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었느냐는 그 일의 성패를 좌우하고 명분을 세워준다. 기초가 튼튼하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 일어날 가능성이 1%라 하더라도 미리 생각하고 대비책을 세워놓으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허둥거리거나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군자(君子)가 천천히 팔자걸음으로 느릿느릿 걷는 이유는 약속시간에 늦지 않도록 일찍 집을 나서는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자는 일을 시작할 때 준비를 철저히 한다(君子 以作事謀始). 편안할 때에도 위기를 생각하고, 살아있으면서도 죽음을 잊지 않으며, 사회가 평화롭더라도 혼란할 때를 대비한다(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성공을 하더라도 철저한 준비로 성공한 사람과 우연한 계기로 성공한 사람의 모습은 다르다. 철저한 준비로 성공한 사람은 그것이 예상된 결과이므로 흥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하다. 성공의 전 과정을 들여다보고 계획하고 대비했기에 도움을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오히려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우연히 성공을 하게 된 사람은 다르다. 스스로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기에 흥분하고 환호성을 지른다. 그 모습이 거만해 보여 사람들은 칭찬을 주저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섭섭하다고 느낀다. 왜 성공한 자신을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느냐고 화를 낸다. 결국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되어 성공보다 더 커다란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작은 배에 무거운 짐을 실으면 가라앉게 된다.”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가르침은 이러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선생은 자신이 진행한 일에 대해 늘 합리적인 규칙과 조례를 만들어 누구나 그것만 보면 쉽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렇기에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하지 못한다.’라는 게 없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선생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선생이 한번 해내면 쉬운 일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본받으려고 노력했다.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이 부탁하지 않아도 기꺼이 도와줬다. 그렇기에 선생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나중에는 선생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나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언제나 여유로웠고 서두르지도 않았지만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처리했고 성실한 자세도 잃지 않았다.”
송나라의 학자 정호(程顥)에 대한 후대의 평가다. 여유로웠고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은 게으르고 굼뜬 것과는 다른 것이다.
쉬지 않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준비하는 성실함이 그 바탕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지혜는 성실함이라는 것을 정호는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준비를 잘 하려면 성실해야 한다. 성실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절제란 아무리 재미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적당한 순간에 그만둘 줄 아는 힘이다.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귀찮고 힘든 일이라 하더라도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다.
성실한 농부는 봄이 와도 서두르지 않는다. 겨울 동안 모든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절제하며 겨울을 보낸 농부에게만 아름다운 게 봄이다. 준비 없는 농부에게 봄은 오히려 두려움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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