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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5 격주간 제8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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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의 고전산책] 부자와 빈자 |
"가난하면 지혜도 짧아진다
人貧智短(인빈지단)
- 《명심보감(明心寶鑑)》 중에서"
가난의 해소, 빈부격차의 문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유가(儒家)에서는 맹자가 이것을 특히 강조했다. 그렇기에 ‘맹자(孟子)’를 읽어보면 경제에 대한 유가(儒家)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양나라의 혜왕이 맹자를 만나 이렇게 물었다. “나는 가난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 지방에 흉년이 들었을 때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주었고 식량도 나누어주었습니다.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도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웃 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그렇지요?”
이에 대해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쟁 중에 한 병사가 겁을 먹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100걸음쯤 가서 멈춰 섰습니다. 또 한 병사는 도망을 치다가 한 50걸음쯤 되는 데서 멈춰 서더니 100걸음 도망친 병사를 보며 ‘비겁한 놈’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이게 옳은 일일까요?”
맹자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흉년이 든 지방의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는 것은 임시방책에 불과하다. 거지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흉년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흉년이 들더라도 민생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평소 그들의 경제력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게 맹자의 생각이었다.
일단 가난한 사람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위정자의 책임이다. 전쟁터에서 도망간 병사와 다를 바가 없다.
그 이후에 그들을 돕느냐 돕지 않느냐는 도망간 발걸음 수를 세는 것과 마찬가지란 뜻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이오십보소백보(以五十步笑百步)’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지만 중요한 것은 오십보백보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말은 뒤에 이어진다.
“나라의 곳곳에 뽕나무를 심어 사람들이 양잠을 하게 한다면 누구나 비단옷을 입어 따스하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가축을 기르게 하여 늙은이들도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농부들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굶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학교를 지어 젊은이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면 모두가 지혜롭게 삶을 영위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지 않고 백성들이 가난한 이유는 흉년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인 후 ‘내가 죽인 게 아니라 칼이 죽인 것’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맹자의 논리는 매우 현실적이다.
가난함은 자랑이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회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가난의 이유도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바른 정치란 가난한 사람들이 없도록 정책을 펴서 사람들이 사람답게 생활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해주고 더 나아가 그들을 교육하여 지혜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난해지면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해져 당연히 안목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판단이 흐려져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개인의 잘못이라고, 게으르고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그들을 가난하게 만든, 지혜가 짧아지게 만든 사회 시스템을 먼저 손봐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개인 스스로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올바름을 따르기 위해서는 올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해야 하는데 너무 가난해지면 판단력이 무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가난하면 지혜가 짧아진다. 행복한 상태가 되어야 정신도 맑아진다(人貧智短, 福至心靈).”는 가르침을 잊지 말자.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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