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5 격주간 제823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사람에게로 가는 길
오래 전에 다녀온 네팔 사진, 히말라야를 보며 산이 된 남자를 생각한다.
설 연휴를 맞아 집에서 영화 ‘히말라야’를 봤다. 보는 순간 나도 몰래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고 끝나고 나서도 영화 속 한 남자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이름은 박정복. ‘히말라야’는 실화다. 엄홍길 대장과 박무택이라는 두 사람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오롯이 남은 한 사람, 그는 죽어서 내게로 왔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라는 나의 편견을 깨 주었다.
그는 히말라야 8750m에서 조난당한 친구를 찾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홀로 갔다. 눈보라와 강풍이 몰아치는 영하 40℃의 어두운 밤, 히말라야를 오른다는 건 자살행위였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는 꼬박 밤을 새워 걸어간 다음 날 새벽, 로프에 매달려 절벽에 얼어붙어 있는 친구를 만났다. 죽어가던 친구는 겨우 눈을 뜨고 자기를 흔들어 깨우는 친구를 보았으리라. 자신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자기 곁으로 달려온 친구를 본 순간 몸은 얼어붙었어도 마음만은 한없이 따뜻하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에베레스트에서 함께 죽었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 살고 있을 것이다.
조난당하던 날 산 아래는 산을 오르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외면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박정복은 달랐다. 그는 사람만 보고 걸어갔다. 에베레스트보다 높고 험하고 아름다운 사람에게로.
‘히말라야’를 보면서 희미하게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식민지 배경의 다큐였는데 당시엔 어느 나라나 기아에 허덕일 때였다. 하루에 한 끼 학교 급식 먹는 게 전부일 때가 많았으므로 아이들은 오로지 점심시간만 기다렸다. 윗도리를 입지 않아 갈비뼈가 앙상한 아이들이 천막 친 식당 앞으로 몰려와 종 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만치 언덕 너머 아이 하나가 보였다. 목발을 짚고 천천히 절룩거리며 학교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일제히 그 친구를 향해 달려갔다. 흙길에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그 아이는 얼마 전 학교에서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다 발목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열십자로 묶은 나무판자에 올려놓고 헹가래를 치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아픈 아이 얼굴에 웃음꽃이 환하게 피어났다. 그때였다. 식당에서 종이 댕그랑 댕그랑 울린 건. 아이들은 그 순간 모든 걸 잊어버렸다. 헹가래 치던 나무판자를 집어던지고 모두 식당으로 달려갔다. 아픈 아이는 순식간에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아이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그때 아이를 일으켜주는 한 아이가 있었다. 모두가 식당으로 달려갈 때 얼굴에 허옇게 버짐 핀 아이가 아픈 아이를 부축하고 식당 반대편, 언덕을 넘어 병원 쪽으로 걸어갔다.
세상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그 길은 고독하지만 그 발자국을 따라 또 누군가 걸어가는 것이다. 엄홍길 대장은 지금 히말라야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있다. 22년간 38번 히말라야를 오르고 세계 최초로 16좌 등정에 성공한 그. 평생 산만 바라보았던 그는 이제 돌아서서 산 아래 사람들에게로 걸어가고 있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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