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5 격주간 제823호>
[이 한권의 책] 김용택의 어머니
우리들 마음의 고향, 어머니!

임 영 택 지도교사(음성 원당초등학교4-H회)

시간은 입춘 지나 우수를 향해 가는 봄날의 첫머리에 들어서 있다. 지난 설 명절에 고향집에서 본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작은 키에 여리디 여린 모습, 그나마도 곧았던 허리가 올해는 유난히 더 굽어보인다. 지난 50년 세월을 논과 밭에서 일과 씨름하며 자식들 건사하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셨을 어머니다.
전이며, 부침이며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는 어머니 손길에서 그 옛날 아궁이에 불을 때며 낮은 부뚜막에서 또닥또닥 칼질을 하시던 어머니가 떠오르는 건 나만의 애상일까? 그렇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의 고향, 언제 어느 때건 힘들고 지쳤을 때 마냥 어린아이처럼 안겨 포근한 잠에 빠져들고 싶은 그런 넓은 가슴을 가진 우리들만의 고향이 바로 어머니 가슴 품이다.
어린 시절 밀가루를 반죽하고 정성껏 치대어 밀대로 밀어 착착 접은 뒤 정성스레 칼국수를 만들던 어머니 옆에서 밀가루 반죽 꼬랑이라도 얻어먹어볼까 턱 괴고 앉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날이면 으레 소죽(소 먹이)을 끓이는 일은 내 차지였다. 가마솥 가득 잘게 썬 여물과 쌀겨, 보리쌀을 넣고, 아궁이 가득 장작불을 지펴 놓고는 콧노래를 부르던 시절. 사실 내게 소죽은 뒷전이었고, 간신히 얻은 밀가루 반죽 꼬랑이를 장작불에 구워먹을 생각이 더 컸었다. 그러다가 아궁이 가득 찼던 화기가 밖으로 ‘훅’하고 나올 때면 앞머리를 태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좋았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칼국수를 하시던 어머니께서 반죽 꼬랑이를 특별히 많이 남겨주시는 날은 더 좋았다.
언제 들어도, 어느 때 들어도, 부르고 또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이름. 바로 어머니다. 작가 김용택은 섬진강 변 어린 시절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고 감칠맛 나는 문체로 그려놓았다. 그리 길지 않은 간결한 문장과 함께 어머니가 사시는 시골집의 모습을 사진으로 함께 보여주고 있어 더욱 더 생생하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어머니는 작가 김용택만의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어머니다. ‘김용택의 어머니’는 우리네 인생과도 같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테마로 모두 4부로 엮었다. 그리고는 각 계절마다 달라지는 어머니의 삶을 순서대로 엮었다.
1부는 ‘봄_봄처녀, 섬진강에 시집오셨네’, 2부는 ‘여름_그 뜨겁고도 환한 시절’, 3부는 ‘가을_어머니의 열매’, 4부는 ‘겨울_마른나무처럼, 어머니 늙어가시네’로 꾸몄다. 모두 53편의 길지 않은 단편과 시골집과 어머니, 논과 밭 등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시골집의 정취가 생생하게 묻어나는 다양한 사진들을 함께 묶었다. 요즘처럼 연애를 한다거나 소개팅을 하지도 못했고, 맞선 한 번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결혼식을 올리는 날 처음 본 신랑의 모습에 반하여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로서 자식을 낳고, 온갖 역경과 고생을 감내하며 살아오신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꼭 이렇다. 인생은 그렇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시집살이로부터 시작하여 자식을 낳고 자식 뒷바라지로 한 세월 다 보내고 이제 맘 편히 살고 자고픈데 몸도 마음도 늙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여름철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다 집에 오면 땀으로 착 달라붙은 옷을 벗고 물을 끼얹는 할머니를 보고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 젖, 할머니 젖”하면 어머니는 “니 애비가 다 뜯어 묵고 이만큼 남았다.”고 하신다.”(214쪽)는 작가의 말을 보며 눈물 흘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이 책에 엮어 놓은 짧은 글들은 바로 우리 어머니들이 살아왔고,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 자손들이 살아갈 그런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본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이런 어머니의 일상을 통해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서 은유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정보화 시대,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여 감당하기조차 벅찬 시대, 하루에도 수 천, 수 만 건의 일과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참 각박하게 세상을 살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옛날에는 말이야?”라고 말하면 세대차이 난다며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듯, 우리 청소년들이 이 책을 통해서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살았던 옛날과 문화적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가정에서는 든든한 버팀목이요, 일터에서는 누구보다 찰진 일꾼이며,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 싹이 나온단다.”(93쪽)라는 감성을 가진 시인인 우리들의 어머니.
오늘은 이 책을 가슴에 품고 어머니를 그리며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눌러가며 편지 한 통 써 보면 어떨까 싶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한 자식으로서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서.
 〈김용택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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