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01 격주간 제822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창의력을 키우는 법
"마음을 바르게, 행동을 의롭게
敬以直內 義以方外(경이직내 의이방외)
- 《주역(周易)》 중에서"

너도 나도 창의력을 외치는 요즘이다.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교육프로그램이 따로 생겨 인기를 끌기도 한다. 남들과 같이 하는 게 아니라 다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해야 성공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그냥 놀게 하는 것이 창의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정말로 창의력을 키워주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일까?
유학(儒學)에서는 따로 창의력을 말하지 않는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키워주는 공부가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것을 접해본 기억이 없다. 다만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라는 충고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유학(儒學)에서 말하는 공부 방법은 창의성을 억압하는 게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오히려 반복으로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창의력의 씨앗이라고 말하고 싶다.
뛰어난 축구선수들의 현란한 드리블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피아노 연주자나 바이올린 연주자의 신들린 듯한 연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경지에 올랐을까.
“어린 아이가 악기를 처음 배울 때를 상상해보십시오. 그들은 마구 두들기고 함부로 연주합니다. 그렇기에 옆에 있는 사람은 귀를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꾸준히 연습한 이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 소리는 맑고 아름답습니다. 그 조화로움이 너무나 오묘하여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과 훈련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과연 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처럼 자유자재로 일상생활 속에서 학문을 활용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것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머리로는 악기를 연주할 줄 알면서도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악기 연주에 대해 알기만 하고 실제로 연주를 못한다면 그는 과연 악기 연주에 대해 아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모르는 사람입니까. 학문 연구는 악기를 다루는 악사처럼 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가 공부 방법에 대해 선조에게 올린 글이다. 현란한 기술은 단단한 기초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아무 데서나 자라나는 게 아니다. 창의력과 상상력도 마찬가지다. 붓을 처음 잡고 마구 휘갈긴 그림을 가지고 추상화라고 우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敬以直內 義以方外(경이직내 의이방외)”라는 충고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직역하면 “경(敬)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의(義)로 행동을 방정하게 한다.” 정도가 될 것이다. ‘주역(周易)’에 나오는 문장이다.
‘경(敬)’은 도덕정신이다. 우주를 탄생하게 만든 바른 이치를 순순히 따르는 것이다. 나를 바른 이치에 익숙하게 만드는 방법은 반복된 연습뿐이다. ‘의(義)’는 사회정의의 실현이다. 이익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는 것이다.
누구나 행복한 사회를 지향한다. 구체적인 실천이기에 책 속에서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찾기는 힘들다.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창의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정성스러운 반복과 연습, 구체적인 실천을 바탕으로 생기는 것은 통찰력(洞察力)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깊은 의미까지 읽어내게 된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통찰력에서 시작된다. 자세히 보아 깊이 알게 되면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단지 자유로운 발상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경(敬)’을 왼쪽 날개로, ‘의(義)’를 오른쪽 날개로 삼아 날아오르는 게 중요하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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