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5 격주간 제821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끈질김이 이긴다
"서둘지 말고, 작은 이익에 매달리지 말라
無欲速 無見小利(무욕속 무견소리)
- 《논어(論語)》 중에서"


공자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인 자하(子夏)는 문학에 능했다. 공자가 스스로 자신의 제자들을 평하면서 “덕행(德行)에는 안회(顔回)·민자건(閔子騫)·염백우(伯牛)·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有)·자로(子路), 문학에는 자유(子游)·자하(子夏)가 뛰어나다.”고 할 정도였다. 실제로 ‘논어(論語)’를 보면 공자와 자하가 ‘시경(詩經)’에 대해 문답을 주고받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자하가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자하가 지방의 어느 작은 마을을 다스리는 수령으로 가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자하가 정치의 도리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서둘지 말고, 작은 이익에 매달리지 말라(無欲速 無見小利). 서두르면 오히려 이루지 못하고, 작은 것에 연연하면 큰일을 하지 못한다(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공자는 제자들의 개성을 살펴 맞춤형 교육을 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공자는 감수성이 예민한 자하에게 서둘지 말라고 충고했다. 자하는 아들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너무 흘려 결국 시력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공자의 충고가 자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리라. 영화를 보며 눈시울을 붉히거나 분노하고, LTE급 속도에도 익숙해진 우리가 아니던가. ‘감성’과 ‘빠름’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우리에게도 소중한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방향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산길이라면 등산로를 이용해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케이블카를 탈 것인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정상에 오르는 것은 같겠지만 그 내용은 다르다. 힘들여 걷고 또 걸어 정상에 오른 사람과 케이블카를 타고 휘파람을 불며 정상에 오른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라면 빨리 올라가는 게 좋겠지만 정상이라는 위치는 삶의 목표가 아니다. 진정한 목표는 나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나의 인성과 체력,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정상은 오히려 위험하다.
나의 몸과 마음, 체력과 실력을 가다듬는 것에 필요한 것은 케이블카의 속도가 아니라 지루함을 이겨내는 끈질김이다. 일상은 지루함의 연속이다. 그 지루함을 견뎌내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꾸준히 걸어가며 산 전체의 모습을 파악하고 산에 대한 의미를 깨닫는다. 산과 나의 관계를 정립하고 주변의 나무와 풀, 바람과 교감한다. 그렇게 산을 배우고 산을 익힌다. 정상에 오르고 오르지 않고는 이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열심히 교감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상에 서게 된다.
서두르는 것은 목표를 중시하는 것이다. 지루함을 참아내는 것은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다. 과정 속에 목표가 녹아들어 있다. 서두르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늦더라도 바른 길을 가려고 해야 한다. 큰 성공을 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올바른 사람, 큰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얻을 수 있다. 조력자를 만들 수 있다.
맹자는 “힘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힘이 부족해서 복종하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나를 따르게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힘으로 굴복시키는 게 패도(覇道)라면 덕(德)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왕도(王道)다. “패도는 반드시 큰 나라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는 왕도는 굳이 큰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覇必有大國 以德行仁者 王不待大).”
무조건 큰 나라로 만들려고 하면 결국 망한다. 그러나 큰 나라가 아니라 올바른 나라를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나라가 커진다. 끈질김보다 강한 것은 없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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