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5 격주간 제821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세상에서 가장 맛난 통닭집 사장님
창밖에 눈발이 날리는 정초 어느 날이었다. 초인종이 울리기에 나가봤더니 혁이가 서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훤칠한 키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우리 아이가 외국에 나가 있어서 혼자 찾아왔다고 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 손에 혁이는 선물을 쥐어주었다. 이게 뭐냐고 묻자 통닭이라고 했다.
나는 혁이를 찾아서 눈이 푹푹 빠지는 산동네로 걸어간 적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혁이는 우리 아이의 단짝 친구였다. 혁이는 머리가 좋아 공부는 잘했지만 아빠는 알콜 중독자였고 엄마는 2학년 때 집을 나간 불쌍한 아이였다. 하루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혁이가 결석을 했다고 걱정을 하길래 혹시 아픈 건가 해서 혁이 집에 간 것이었다.
혁이는 집에 없었다. 아빠는 술에 취했는지 코를 골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찾으러 눈 속을 헤매 다녔다.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워졌기에 동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넓은 어둠 속에 아이는 짐승처럼 혼자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면을 사 먹이고 집으로 들여보냈다.
혁이가 왔다 가면 무엇이든 없어진다고 학부모들 사이에선 소문이 나있었다. 어느 날 혁이가 우리 집 돼지 저금통을 등 뒤로 숨기는 걸 보았다. 나는 못 본 척 얼른 밖으로 나왔다. 우리 아이에게도 그 일은 비밀로 했다. 그리고 똑같은 저금통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얼마 후 우리 집에 놀러 온 혁이에게 물었다. “혁아, 넌 커서 어떤 어른이 될 거니? 꿈이 뭐야?” 혁이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통닭집 사장이라고 했다. 나는 색종이 한 장을 꺼내 손바닥으로 비빈 후 말했다. “이건 그냥 색종이가 아니고 꿈종이야. 네가 원하는 걸 여기 적으면 꼭 이루어질 거야.” 혁이는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 썼다. ‘통닭집사장’이라고. 나는 사장 옆에 ‘님’ 자를 썼다. 그리고 그걸 봉투에 넣어 혁이에게 주었다. 그 후 혁이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맛난 통닭집 사장님’이라고 불러주었다.
시장 모퉁이에 서서 통닭집을 바라보는 혁이를 본 날 저녁, 통닭을 사서 우리 아이랑 같이 먹인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얼마 후 혁이는 이사를 갔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가끔 우리 아이를 통해 혁이가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잊고 살았다. 그런데 혁이가 뜻밖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꿈종이에 썼던 통닭집 사장님이 되어서.
예전의 모습 그대로인 단춧구멍 같은 눈으로 혁이는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외할머니와 산다고 했다. 대학 졸업하고 시장에 작은 통닭집을 내었다고. 나는 그렇게 맛있는 통닭을 먹어 본 적이 없다. 혁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온전한 감동을 내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혁이는 모를 거다. 저금통이 없어졌을 때 내 마음 한 켠에서 내 아이에게서 혁이를 떼어내고 싶었던 심각한 갈등을. 그러나 혁이 때문에 고민했고 깨달았다.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나무뿌리와 같이 얽혀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임을. 한쪽이 무너지면 함께 무너진다는 것을.
내가 스스로에게 자주 들려주는 말이 있다.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며 그것이 600만 년 생존의 전략이다.’ 〈김금래 / 시인〉

새해를 맞아 혁이가 내게로 왔다. 마음 한구석이 환하게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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