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1 격주간 제820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새해 소망

"부지런함보다 귀한 것은 없다
勤爲無價之寶(근위무가지보)
- 《명심보감(明心寶鑑)》 중에서"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소망을 품게 된다. 몰래 일기장에 써놓는 경우도 있고 큰 종이에 써서 책상머리에 붙여놓거나 사람들 앞에 나아가 큰 소리로 다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바라기도 하고 건강을 빌기도 하며 성공을 기원하기도 한다. 복(福)을 비는 것이다.
복(福)을 말할 때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오복(五福))’이다. 오복은 ‘서경(書經)’에 등장하는 데,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이 그것이다. 오래 사는 것(壽),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富), 편안하게 사는 것(康寧), 덕을 쌓는 것(攸好德),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考終命), 이 다섯 가지가 최고의 복이라는 뜻이다.
유학(儒學)을 공부하던 옛날의 학자들은 무엇을 빌었을까. 그들은 글을 써서 눈에 잘 보이는 벽에 붙여놓거나 자주 사용하는 사물에 새겨 놓고 수시로 그것을 바라보며 의지를 다지곤 했다. 이를 ‘잠(箴)’이라 하기도 하고 ‘명(銘)’이라 하기도 한다.
‘잠(箴)’은 바늘이나 침을 뜻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침을 놓아 병을 낫게 하는 것처럼 잠언(箴言)으로 잘못을 예방도 하고 또 바로잡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명(銘)’은 비석이나 바위에 새겨 넣는 글을 말하는데, 그 중에서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좌우명(座右銘)’이라고 불렀다.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경구를 생활공간에 새기어 놓는다. ‘좌우명(座右銘)’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내가 앉는 자리 오른쪽에 새겨둔 글’이 된다.
정이(程)의 ‘사물잠(四勿箴)’, 주자의 ‘경재잠(敬齋箴)’과 ‘구방심재명(求放心齋銘)’ 등이 유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잠(箴)과 명(銘)에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그들도 복(福)을 빌었을까?
정이의 제자 이유가 정이에게 물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스스로 긴장하여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만들 수 있으나 평소에는 그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옛날 선배 학자들도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방의 여기저기에 마음을 가다듬는 글귀를 써서 붙여놓을 정도였다. 밥그릇에도 세숫대야에도 지팡이에까지 마음을 가다듬는 글귀를 새겨놓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혼자 있더라도 마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처럼 단정하게 하는 것을 습관처럼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니 그릇을 바르게 해야만 그릇에 담긴 것도 바르게 된다. 바른 이치는 밖에서 구하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바르게 만드는 것, 바른 이치가 몸과 마음에 달라붙도록 하는 것이 시작이며 끝이다.”
그들은 복을 빌지 않았다. 올바른 몸과 마음을 잃지 않기를 빌었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면 복은 저절로 찾아온다.
공자가 끊어버린 4가지, ‘자절사(子絶四)’를 기억하는가. 자신만의 주관적인 생각(意)을 끊었다. 기필코 이루어내겠다는 의지(必)를 끊었다. 고집(固)을 끊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我)을 끊었다. 복을 빌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서경(書經)’에서는 왜 오복(五福)을 말했는가.
오복(五福)은 올바름을 추구한 뒤에 얻어지는 부차적인 결과물이다. 긍정적인 부작용(副作用)이다. 오복을 추구하여 오복을 얻는 게 아니다. 올바름을 추구하여 오복을 얻는다. 1등을 추구한 게 아니라 단지 열심히 공부했더니 1등이 되는 원리다.
“부지런함보다 귀한 것은 없다(勤爲無價之寶).”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가르침을 잊지 말자.
부지런하게 올바름을 추구하면, 나 자신이 바르게 가다듬어짐은 물론이고 여기에 보너스로 오복(五福)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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