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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5 격주간 제8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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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의 고전산책] 함께 살아가기 |
"저들도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다
與自家意思一般(여자가의사일반)
- 《근사록(近思錄)》 중에서"
또 한해가 저물어 간다. 새해를 맞이하며 세웠던 계획과 다짐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점검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은 게 일반적이다. 때론 이런 것이 가로막았고 때론 저런 것이 붙잡아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이런 아쉬움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가로막는 것을 물리치고 붙잡는 것을 뿌리치면 될까?
송나라의 학자 주돈이(周敦)는 유교와 대척점에 있던 불교와 도교의 철학적 개념들을 받아들여 성리학(性理學)의 이론적 기초를 닦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세운 철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것들을 이전의 것과 구분하기 위해 신유학(新儒學)이라 부른다. 그가 세운 기초가 있었기에 주자의 학문이 나올 수 있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유명한 정호(程顥)와 정이(程) 형제도 주돈이의 제자였다.
어느 날 정호가 주돈이를 찾아갔다. 그런데 선생이 머물고 있는 방의 창문이 잡초와 잡목으로 가려져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이에 제자인 정호는 선생이 창문 밖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잡초와 잡목을 정리할까 하는 마음으로 “창문 앞 잡초를 베지 않으셨군요(窓前艸不除去).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제가 정리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주돈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풀들도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다(與自家意思一般).”
이것은 무슨 뜻일까. 풀들도 주돈이의 집이 가로막아 불편할 것이지만 집을 공격하여 허물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저들도 나와 같은 생명이니 어찌 훼손하겠느냐?’는 뜻, 그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나와 같다는 뜻일 수도 있으리라.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의사(意思)인 것처럼 풀들도 그런 의사(意思)를 지니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나를 가로막는 것을 물리치고 나를 붙잡는 것을 뿌리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끌어안아야 한다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주돈이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정호(程顥)의 동생인 정이(程)가 모함을 받아 귀양을 갈 때의 일이다.
유배지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근처 절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동행하던 정이의 제자는 스승이 불상을 마주하지 않도록 불상을 등지는 방향으로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정이는 제자가 마련해준 자리를 마다하고 굳이 불상을 마주하며 공손하고 단정하게 자리를 잡았다.
유교는 불교를 배척하는 것으로 유명한 학문이었기에 제자는 깜짝 놀라서 이렇게 물었다. “불상을 공경하는 것은 불교를 믿는 스님들이나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불상에게도 공손하게 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정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불상을 잘 보아라.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느냐.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但具人形貌 便不當(단구인형모 편부당만).” ‘심경부주(心經附註)’에 나오는 대목이다.
당시 유학자들은 불교가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혹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다고 비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이는 불상에 예의를 갖추었다. 도교와 불교의 가르침을 무작정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이를 재해석하여 유교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주돈이, 추구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예의를 갖춘 정이를 보며 생각한다.
나를 가로막고 나를 붙잡은 것들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아니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구분하며 반쪽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새해에는 반쪽이 아닌 온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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