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5 격주간 제819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모란카페에서 그녀를 만나다
시 노트를 펴면 그녀는 내게 묻는다. “ 그게 진심이냐?”라고.
12월은 골목길 모퉁이를 닮았다. 각진 모퉁이를 돌아가기 전 문득 멈추어 뒤를 돌아보게 되는 12월. 자기가 지나 온 길을 돌아보는 눈빛은 쓸쓸하고 다정하다. 골목길엔 라일락이 피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그리운 사람이 서있기도 하니까.
단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내게 삶의 진정성에 대해 가르쳐준 여인이 있다. 그녀를 만난 건 몽마르뜨공원에서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갔다가 산책 삼아 공원으로 올라가는데 노래 소리가 들렸다. 그 노래는 뜻밖에 샹송이었다. 풍부한 성량의 고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특한 에너지가 숲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는 그쪽 방면의 프로가 분명했다. 뜻밖에 숲속에서 흘러나오는 샹송은 공원의 공기를 흔들며 내 가슴을 파도치게 했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갔다.
 후미진 공원 모퉁이 마지막 벤치에 그녀는 앉아 있었다. 이른 저녁인데 촛불을 미리 밝히고 등 뒤 나뭇가지엔 ‘모란카페’라고 쓴 도화지가 붙어 있었다. 그녀는 집시를 연상하게 했다. 추운 날씨인데 치마는 남루했고 숄 하나를 둘렀을 뿐이었다. 나를 위해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를 열창했다. 나는 눈을 감고 부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늙고 병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깊고 뜨거운 눈물이 되어 내 안에 고였다.
노래가 끝나자 눈을 뜨고 그녀는 말했다. “사람들 눈을 보면 떨려서요.” 나는 놀랐다. 가수인 줄 알았는데 그녀는 유튜브를 통해 혼자 샹송을 배웠단다. 발음을 수천 번 듣고 한글로 써서 외운다고. 그리고 녹음을 해 수백 번을 듣는다고. 왜 그리 많이 듣느냐고 하자 그녀는 “내가 나를 보는 방법이지요.”라며 듣는 횟수만큼 그녀가 보인다고 했다. 고음에서 교만한 마음이 드러날 때가 가장 슬프다고.
내가 시를 쓴다고 하자 그녀는 “시 쓰는 일은 진심을 찾아가는 여행이지요.”라고 했다. 난 심히 부끄러웠다. 그녀는 강원도 문막에 방을 얻어 살고 있다가 지금은 샹송을 부르려고 서울 거리를 헤매어 다닌다고 했다. 짐작한 대로 몸이 아픈 여인이었다. 돈을 다 없애고 빈방에 혼자 앉아 죽으려고 할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샹송을 듣다가 다시 살기로 했단다.
샹송을 부르다 죽기로. 그러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더라고. 그러나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단다.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 여기에 온 지는 3일째. 그녀는 나에게 모란카페를 자랑했다. 자주 오라고 너무나 좋은 곳이라고, 매일 여기서 노래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나는 그녀의 희망이 두려웠다. 밝음 뒤편은 어둠이므로.
일주일 후 나는 그녀가 궁금해 몽마르뜨공원으로 갔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녀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모란카페는 없었다. 길모퉁이 의자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언제 그런 여인이 있었냐는 듯. 나는 사가지고 갔던 만두와 음료수를 벤치에 두고 내려왔다.
12월의 모퉁이에 서서 나는 돌아본다. 그녀는 사라졌어도 내 기억의 골목에 서 있는 그녀를. 나는 집으로 돌아와 시 적는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맨 앞장에 꾹꾹 눌러 썼다. ‘진심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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