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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바람 부는 쪽을 향해 일렬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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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혼자 여행을 떠난다. 혼자 길을 가면 무얼 먹든 무얼 하든 어딜 가든 자유다. 그럴 때 나는 비로소 너무나 익숙해 가슴 떨리는 원초적인 해방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막연히 집을 나와 기차역에서 시간표를 기웃거리는 것은 자궁 밖으로 밀려나온 아이와 같은 느낌이다. 자궁과 결별하고 탯줄이 끊어지고 울음이 터졌던 날이 내게도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그 첫 번째 여행을 통해 세상으로 온다. 그 무의식의 경험으로 나는 늘 어디론가 떠났다 돌아오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혼자 경포에 갔다. 때로는 사람보다 그리운 풍경이 있다. 눈이 내려 쌓이듯 마음에 풍경이 쌓이면 나는 길을 나선다. 아득한 지평선과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보는 순간 나는 숨을 몰아쉬게 된다. 비릿한 숨결이 내 안의 허공에 울컥 차오른다. 누구도 채워 줄 수 없는 푸른 하늘같은 허공. 밀려오고 밀려오는 파도는 우리의 외로움을 닮았다.
경포엔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았다. 새들은 바닷가 모래밭에 바람 부는 쪽을 향해 일렬로 앉아있었다. 누구나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다. 새들은 자신의 날개를 지키기 위해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다. 나는 오랫동안 새가 되고 싶었다.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새를 보면 그 자유로움에 눈물이 핑 돈다. 그러나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는 생각이 달라진다. 목숨을 걸고 먹이를 찾아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새들. 새들에게 날개란 자유지만 생존의 무기이기도 하다.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때마다 하늘의 무한한 허공에 공포를 느낄 것이다.
바닷가를 거닐다 혼자 날아오르는 작은 새를 보았다. 바람에 비틀거리며 저항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조마조마 바라보노라니 새처럼 종아리가 가느다란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혼자 부산에 사는 이모에게 간 적이 있다. 완행열차를 탔는데 어찌나 먼지 세상엔 가도 가도 끝없는 길이 있음을 알았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 꼿꼿이 앉아 있었다. 역을 놓칠까봐 창밖을 내다보며 역 이름만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서면역에 내렸을 때 이모는 없었다. 말라깽이 강원도 산골 아이는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 서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돌멩이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행이란 선택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로터리엔 무더기로 꽃이 피어있고 사람들은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 길 위에 서면 내가 보인다. 우주 속에 혼자 버려진 나. 두려운 감정에 사로잡혀 이모를 부르며 내가 울기 시작했을 때 수염 난 아저씨가 다가와 어디서 왔냐고 이름이 뭐냐고 묻더니 손을 잡았다. 아저씨에 끌려 로터리를 돌아가는데 등 뒤에서 이모 목소리가 들렸다.
경포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낙엽이 먼 길을 나서고 있었다. 혼자 떠난 여행의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이 생애 외로움을 끌어안을 수가 있다고 한다. 여행이란 자신에게 스스로 불을 밝히는 일이다. 매달려 있던 가지를 탯줄처럼 자르고 환하게 붉어져 길이 되는 단풍잎들. 여행은 혼자 떠나 둘이 되어 돌아오고 싶은 갈망인지도 모른다. 나는 단풍잎을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손바닥이 따듯했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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