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이 없는데, 그게 어찌 ‘고’냐? 그게 ‘고’냐?
不, 哉! 哉!(고불고, 고재! 고재!)
- 《논어(論語)》 중에서"
‘고()’는 고대 중국에서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던 술잔이다. 윗부분은 넓고 중간 부분은 잘록하지만 아랫부분은 다시 넓어진다. 그런데 결정적인 특징은 4각형(혹은 8각형) 기둥 모양이라는 것이다. ‘고()’라고 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래서 ‘술잔’, ‘네모’, ‘각(모서리)을 지니다’ 등이 된다. 이 모든 의미를 하나로 모은 것이 제사 때에 사용하는 술잔 ‘고()’다.
그런데 이 ‘고’라는 술잔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잔(盞)을 머리에 떠올려 보자. 사각 모양의 잔이 있는가? 게다가 위 아래로 길고 윗부분이 넓은 모양이라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불편한 술잔을 사용했을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제사는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지내야 한다.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의 표현이 형식이다. 아무렇게나 내 맘대로 하면 마음이 흐트러지기 쉽기 때문에 마음을 단정히 만들기 위해 불편한 형식을 만들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있을 때와 정장을 입고 있을 때의 마음가짐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러한 ‘고’가 불편하다고 하며 사람들이 모서리를 없애고 둥근 잔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 잔은 ‘고’인가 ‘고’가 아닌가? 공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도 거듭 두 번에 걸쳐 강조한다. 공자가 형식만 강조하는 앞뒤가 막힌 늙은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고’에서 각을 없앴다면 ‘고()’라 부르지 말고 그냥 ‘잔(盞)’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백성의 올바른 스승처럼 행동하고 모든 백성들의 참다운 부모처럼 행동하지 않는 자를, 그저 권력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러한 사람은 임금(王者)이 아니라 단지 권력자일 뿐이다. 한 무리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그런데 스스로 임금이라고 부른다. 주변에서 아부하는 무리들도 그렇게 부른다.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부르라고 강요한다. 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높은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고불고, 고재! 고재!” 본질을 잃고 적당히 모양새만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는 저버리고 권리만 내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라 주장하는 사람과 그 무리들에게 가하는 질타의 목소리다.
우리는 흔히 ‘공자’라고 하면 ‘논어(論語)’나 ‘시경(詩經)’을 머리에 떠올리지만 ‘사기(史記)’를 지은 역사학자 사마천(司馬遷)은 다르게 말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공자는 언제나 다른 사람과 의논하여 판단을 내렸다. 결코 자기 혼자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춘추’를 지을 때에는 달랐다. 어떠한 제자도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춘추’를 완성하고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춘추’ 때문일 것이다.’”
사마천은 공자가 남긴 최고의 업적으로 역사책 ‘춘추’를 들었고 공자 스스로도 ‘춘추’를 가장 높게 평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가 ‘춘추’를 통해 강조한 것이 바로 ‘정명(正名)’이다.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하였다. 그 실천이 바로 ‘춘추’의 저술이었다. “고불고, 고재! 고재!”의 외침이었다.
“공자가 편찬 및 저술에 관계한 책 중에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를 가리켜 오경(五經)이라고 말하는데, 이 중에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는 원칙을 제시하는 법령과 같고 ‘춘추(春秋)’는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한 판례와 같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 정이(程)의 말이다.
역사(歷史)는 사실(史實)에 대한 판단이다.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오늘, 공자가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이 궁금하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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