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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5 격주간 제8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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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착한나들이] 가을 숲에는 소리가 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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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몽골 초원엔 이정표도 없다. |
가을이 오는 숲에서 보았다. 젊은 남녀를. 남자는 카메라 다리를 세워 놓고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등 뒤에서 바라본 여자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하늘에서 날아온 눈송이처럼 희고 깨끗한 그녀는 이 가을에 결혼하는 신부 같았다. 그러나 옆을 스치면서 바라본 그녀의 배는 만삭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카메라를 조정해 놓은 남편이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뜻밖에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배에다 귀를 갖다 대었다. 그녀의 뱃속에서 들리는 아기의 심장 소리는 아빠의 귀를 타고 내게까지 전해져왔다. 이 세상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지만 뱃속에 있는 아가의 소리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소리는 없을 것이다. 아가는 언젠가 아빠의 따스한 볼과 자신의 심장소리가 맞닿아 있는 사진을 보게 될 것이고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풍경 하나를 떠 올렸다.
몽골에서 일이었다. 나도 자동차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고비사막에선 보통 한 시간 정도를 달려야 몽골 사람이 사는 게르(Ger)가 나온다.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이 이어지는 초원에 서면 동서남북 아득한 지평선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둘러봐도 똑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몽골 초원엔 이정표도 없다. 여행을 하다 길을 잃으면 그 자리에서 몇 날 며칠 누군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눈 내리는 겨울밤이면 원주민도 방향감각을 잃고 때론 목숨을 잃기도 한다.
우리가 탄 차는 나흘째 고비사막을 달리다 해질녘 멈춰 섰다. 두 대로 출발했는데 한 대는 먼저 가고 우리 차만 사막에 버려진 것이다. 저만치 발 아래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광활한 사막에 멈춰 선 차는 지친 짐승처럼 꼼짝 하지 않았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고장 난 그 차에 망연히 기대 서 있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 왔다.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심장 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흐느낌 소리 같기도 한, 꿈결 같은 소리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나는 놀라 귀를 의심하며 사람들을 눈짓으로 불렀다. 사람들은 다가와 모두 귀를 대고 숨을 죽였다. 자동차는 바람과 속삭이고 있었다. 고장 난 자동차의 헐거워진 부품 사이로 들어간 바람이 울고 웃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날 밤 자동차는 어쩌면 바람의 아이를 낳았을까? 몽골은 바람의 나라다. 바람은 바람을 낳는 법이니까. 우리는 지금도 만나면 이야기한다. 자동차 꽁무니에 매달려 듣던 그 오묘한 바람 소리를.
이 가을엔 유별나게 엄마 목소리가 그립다. 엄마가 내 이름 부르는 소리를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엄마의 임종 때 울지 않았다. 식어가는 엄마의 가슴에 손을 넣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무거운 내 울음소리를 달고 하늘로 날아가려면 힘들 것 같아서. 엄마는 세상에 와 처마 끝의 풍경처럼 울다 사라졌다.
이제 곧 겨울이 오고 눈이 올 것이다. 구름이 비가 되어 세상으로 오듯 어쩌면 엄마 목소리도 첫눈이 되어 하얀 날개를 달고 내게로 날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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