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5 격주간 제815호>
[이 한권의 책] 상처받지 않을 권리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이 종 무 지도교사(울산 홍명고등학교4-H회)

요즘 고3학생들의 주 관심사는 대학 입시다. 그런데 수업을 하다보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대학 진학과 관련된 질문을 한다는 게 “선생님, 어떤 학과가 돈 잘 벌어요?”라고 뜬금없이 잘 묻는다. 물론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사회 진출을 위한 통과의례 쯤 된 것도 이미 별다른 얘기도 아닐 터. 자본주의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심리까지 바꾸고 있다는 현실 앞에 숙연해질 뿐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위력이 대단하다. 이것을 잘 아는 학생들의 주된 관심사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집어등(集魚燈)의 치명적인 위험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달려가는 오징어처럼 자본주의 체재의 욕망을 우리는 쉽게 뿌리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다 수업 시간에 돈과 관련된 얘기가 나온다. 그럴 때 윤리선생님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말씀하신다. 경제선생님은 ‘돈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라.’고 가르치신다. 그러나 이 책이 선생님처럼 얘기한다면, ‘돈은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다. 하지만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고 얘기할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이 ‘상처받지 않을 권리’이고, 부제는(저자의 말씀인 듯)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이다. 겉과 속이 다른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곧 상처받지 않을 권리이기도 하다. 즉, 자본주의에 물들여진 우리는 그로인해 여러 병폐를 안고 살아간다. 이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 때 치유가 되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희망이고 권리다. 물론 이 책에는 이렇게 단순하게 얘기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상처받은 문학가인 이상, 보들레르, 투르니에, 유하 등과 마르크스 이후 자본주의적 삶을 깊이 있게 탐색한 사상가인 짐멜, 벤야민, 부르디외, 보드리아르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대표인 화폐, 노동 그리고 소비까지 폭넓은 시각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이해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로 인해 상처받고 분열되어 있는 내면세계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을 절감했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세계를 탐색한다고 했다.
‘날개’의 작가 이상을 예로 들어 우리의 내면세계를 탐색한 부분을 보자. 기존의 문학평론가의 입장인 성(性), 심리, 초현실주의 등에서 벗어나 화폐경제라는 입장에서 분석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화폐경제가 낳은 개인주의가 우리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에 대한 이해도 덧붙이고 있다. 로빈스 크루소와 타자의 발견에서는 들뢰즈와 투르나에를 얘기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시간의식이 지닌 전형적 특성을 밝혔다. 무인도에서의 시간은 ‘시간의 밖에 있는 것처럼 살기 시작한’ 바로 그 시간이 로빈슨이 스페란차섬에서 체험한 진정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은 로빈슨만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티즘과 산업자본주의라는 괴물과 함께 섬에 상륙했다는 다소 깜찍한 발상으로 작품을 재해석하고 있다. 그러니까 부제로 달려있는 소제목과 내용이 언뜻 매치가 되지 않는 점이 있다. 하지만 천천히 읽다보면 저자가 왜 이리 소제목을 적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묘미 중에는 이런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 책은 총 4개 부문에 걸쳐 문학과 철학을 중심으로 자신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작품을 살펴보고, 사회철학적 전망을 부여하는 사상가의 철학적 관점을 넣고 있다. 1부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찾아서’에서는 이상의 문학과 짐멜의 사상을, 2부 ‘화려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에서는 보들레르의 문학과 벤야민의 사상을, 3부 ‘매트릭스는 우리 내면에 있다’에서는 투르니에의 문학과 부룬디외의 사상을, 4부 ‘건강한 노동을 선물하기’에서는 유하의 문학과 보드리아르의 사상을 각각 짝으로 배치하였다. 즉, 직관의 예술과 이성적 사상을 묶어 인문학적 치유를 모색했다. 경제관련 서적은 많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 우리 내면세계를 탐색한 경우는 거의 없어 철학, 사회학 그리고 자본주의를 경제와 인문 그리고 문화까지 총 망라하여 요소요소를 파헤쳐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내린 책이기도 하다. 의사가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일을 한다면, 이 책은 사회의 현상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면 후기 근대를 사는 사람으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강신주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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