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5 격주간 제813호>
[이 달의 착한나들이] 달을 향해 마음의 손을 모으다
‘내 안에 저렇게 환하고 밝은 눈 하나 걸어두기를!’

지지난해 사우디에서 일하는 아들과 두바이 여행을 했다. 두바이는 사막에 세워진 나라인  아랍에미리트의 최대 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를 보고 이동하려고 택시정류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택시가 대기 중이었는데 뜻밖에 고급 승용차였다. 우리는 꺼림칙했지만 피곤해서 그냥 탔다. 그러나 이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미터기가 안 보이는 것이다. 한참 가다 왜 미터기가 없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운전사는 웃으며 숨겨두었던 미터기를 꺼내 보여주었다.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들이 내려달라고 하자 돈을 깎아주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이만 오천 원 정도를 내라고 했다. 일반 택시비보다 싸게 받는 거라고. 그러나 우리가 화를 내며 계속해서 항의하자 그는 단념한 듯 차를 돌렸다. 그는 여기서는 내려줄 수 없다며 탔던 자리까지 와서 내려주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우리는 사기꾼이라 욕을 하며 다시 일반 택시를 탔다. 그러나 우리가 목적지에 내렸을 때 지불한 미터기 요금은 삼만 원이었다. 그를 오해해서 시간 낭비하고 화내고 그분에게 잊지 못할 부끄러운 짓을 저지른 것이다.
엊그제 조조할인 극장에 갔다. 이른 시간이라 극장엔 아무도 없었는데 불이 꺼지고 영화가 상영되자 고등학생 같은 젊은 남자 아이가 들어왔다. 모자를 눌러쓰고 내 옆 통로 쪽 의자에 가방을 던지고 서있었다. 나는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둘이 있다는 게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앉지 않고 서 있는 게 수상하지 않은가. 왜 서있을까? 온갖 상상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 나를 해칠 생각인 것 같았다. 손에 흉기를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엉겁결에 일어나 맨 앞자리로 가서 비스듬히 앉았다. 사선으로 앉아 그 남자와 영화를 곁눈질하다 끝내는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날 밤 친구 집에서 모임이 있어 그 이야기를 했다. 의견은 분분했다. 잘 나왔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도 엉덩이 종기 때문에 서서 본 적이 있었다, 그 젊은이가 오히려 내가 무서워서 서있었을 것이다, 시험을 망치고 속상해 왔는데 내 하는 꼴에 어이가 없었을 거라는 둥. 저마다 다른 생각에 나는 씁쓸하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은 타인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격이 드러난다. 개인이나 국가의 수준은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높이라고 한다.
그날은 마침 보름이었다. 보름달은 완벽하게 둥글었다. 어찌나 달빛이 환한지 우리는 대문을 나서다 말고 멈추어 달구경을 했다. 남산 밑에 있는 집이라 자연 속에 파묻힌 적요(寂寥)가 환하게 드러났다. 자연은 실수가 없다. 어김없이 가을은 와 귀뚜라미 울고 마당의 대추나무는 대추나무대로 환하고 바닥의 디딤돌도 제게 온 달빛만큼 밝았다. 달은 굴곡 없는 시선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빛나게 한다. 생각 많고 복잡한 나를 내려다보는 단순 명쾌한 눈동자.
나는 마음의 손을 모으고 하늘 우러러 소망했다. ‘내 안에 저렇게 환하고 밝은 눈 하나 걸어두기를!’ 
〈김금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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