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한 글 속에 담긴 보름달만한 웃음
임 영 택 지도교사(음성 원당초등학교4-H회)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내 삶에 있어서 지나온 과거의 일상들과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내 모습…. ‘글쎄 뭐 이런 상념들이 쓸데가 있을까?’ 싶지만 코발트 빛 티 없는 하늘은 아무 조건 없이 그런 상념을 내게 던진다.
이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부족한 상념들이 어디 가을하늘을 바라볼 때뿐이랴. 새까만 밤하늘 군데군데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보이는 달에게는 또 어떤가? 어떤 이는 초승달을 보고 미인의 아미를 닮았다 하고, 누구는 둥그런 아기 얼굴을 보름달 닮았다 한다. 이처럼 달은 우리에게 참 많은 상념들을 불러다 준다. 특히 보름달은 소원을 빌기에도 딱 안성맞춤이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전하고 픈 사랑의 감정도 여기에 담겨 있다. 한가위에 휘영청 둥근 보름달을 보고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아닌 밤이면 언제든 볼 수 있는 달에게 한번쯤은 두런두런 수다를 떨어보고 싶은 때가 있다. 평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다 터놓지 못했던 이야기들, 속상한 마음들, 우울하고 괴롭고 아픈 기억들,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없었던 아픔들을 말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작가도 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는 책의 제목을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붙이고, 모두 4부로 구성하였다. 그리고는 읽기 편하게 구성한 짧은 소설 속에 때로는 독백을 하듯이 또 때로는 방백으로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조곤조곤 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배꼽을 움켜쥐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을 정도는 아니며, 그렇다고 썰렁 개그 수준의 유머도 아니다. 짧은 한 편의 소설을 금방 읽고 나서 ‘아하!’ 하고 웃음을 톡 터트릴 수 있는 꼭 그 만큼의 유머다.
1부는 초승달에게, 2부는 반달에게, 3부는 보름달에게, 4부는 그믐달에게로 꾸며 모두 27편의 짧은 소설로 엮었다. 작가는 오래전 어느 밤, 동네 산책 중에 무심히 올려다 본 하늘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둥그런 달에게 문득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이 글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늘 어느 한 순간에 쓰여졌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이렇듯 늘 한순간이 아닐까? 세상에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돈 벌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살다가 늙어져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인생 여정이 늘 한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듯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엮어졌다. 바로 우리 같은 서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엮었다. 그러니까 머물러 있던 어떤 순간들의 반짝임으로 쓴 글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얼굴에는 잔잔한 웃음이 끊이질 않으며, 소설이면서도 마치 수필을 읽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마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엮어 놓은 짧은 소설들은 큰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안에서 웃음을 찾고 있다. 그 웃음이 곧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각각의 짧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우체부 아저씨, 여고동창생들, 작은 시골교회 목사님과 작은 사찰의 스님,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딸, 허리 수술을 하고 난 엄마, 교수 임용을 갈망하며 수 없이 떨어져도 끊임없이 이력서를 내는 교수 지망생, 귀농인, 샐러리맨, 증권회사 직원, 고양이 뒤치다꺼리 하는 백수, 언니, 이모, 누나, 치과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M….
하루하루 힘들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웃음이란 어떤 의미일까? 정말로 한번쯤 마음 편안하게 웃어본 적이 있기는 한 걸까?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자. 만약 제대로 웃어 본 적이 없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잔잔한 웃음을 마음속 가득 담아보길 권하고 싶다.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도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지치고 고된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 대입 수능 준비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수험생, 하는 일 마다 실패를 거듭하는 취업 준비생, 자녀 문제로 속 끓이는 부모들 등 수없이 많은 갈등과 번민 속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아보길 바란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1만2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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