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15 격주간 제811호>
[지도자 탐방] 4-H운동으로 미래 일구는 제2의 삶

김 영 운  지도자 (충남 예산군4-H본부 회장)

지역사회의 미래를 위해 두 번째 삶을 4-H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김영운(63·충남 예산군 응봉면 노화조개내길)회장을 만났다.
“첫 번째 인생을 4-H가 일궈줬으니, 두 번째 인생은 4-H운동에 매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김영운 회장은 어머니 배 속에서 나 삶이 시작됐지만 2009년 병마를 이겨낸 것은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당시 병원에서 6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던 그는 간이식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기약할 수 없었던 새 인생을 살게 됐다. 김 회장은 35년간의 공직생활을 명예퇴직으로 마무리해야할 만큼 급박했던 병세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어려운 투병생활을 견뎌낸 힘은 어릴 적 가슴에 새긴 4-H정신에서 나온 것이라 했다.
김영운 회장은 1965년 고향인 예산군 응봉면 증곡리에서 4-H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권오흥 지도자가 이끌던 선녀동4-H회는 활발한 활동으로 인정받던 선도4-H회였단다. 배우고 익히는 것이 즐거웠던 그는 마을회장에서 시작해 군연합회장, 도연합회장까지 역임했다.

4-H가 인도해준 공직의 길

4-H과제이수에 열심을 내던 김영운 회장은 1970년 중앙농업기계훈련소에 입소할 기회를 얻게 됐다. 14주의 훈련기간을 거쳐 원동기 취급 자격증을 획득했는데, 농업계고등학교 출신의 기계 관련 자격증 취득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덕분에 1973년 고향인 예산군농촌지도소의 농기계교관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4-H가 공직으로의 첫 걸음을 떼 준 것이다.
농기계교관으로 지내던 중 그는 4-H로 체득한 도전정신으로 시험에 응시해 1977년 옹진군농촌지도소 농촌지도사로 발령을 받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예산군농촌지도소에서도 지도사로서의 임무를 담당했다. 그러던 중 농촌이 잘살려면 농업지도도 중요하지만, 행정이 잘 이루어져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1986년 행정으로 전직해서 예산군 덕산면사무소에서 근무했다.
김영운 회장은 좋은 것을 더욱 좋게 하자는 4-H금언처럼 우리 지역을 더 살기 좋게 하기 위해 노력한 35년이었다고 공직생활을 회고했다.

회원의 뒷받침이 되는 지도자

건강을 회복하고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2011년 농업기술센터 농업인대학 친환경반에 입학한 것이었다. 농촌이 잘살려면 관행농사에서 벗어나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해야 하는데 그 해결책을 친환경농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한편 보급하는데도 열성을 내고 있다. 친환경농업자재를 직접 만들어 원가로 농가에 공급하는데, 시중가의 50%미만이다보니 찾는 곳이 많다고. 김 회장은 경영비가 높아 어려움을 겪는 농가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고되지만 보람 있단다.
김영운 회장은 농촌이 잘살아야 젊은이들이 농업에 청춘을 걸어볼 것이 아니냐며, 4-H본부가 활성화돼 회원들의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야한다고 역설한다. 과거 그가 권오흥 지도자에게서 받은 것처럼, 회원들의 미래에 보탬이 되어주는 것이 새롭게 태어난 제2의 인생의 목표란다. 그는 취임 후 4-H본부 회원 확보에 매진해 44명의 회원을 92명으로 확대했다.
“젊은이가 적어 수적으로 열세이다 보니 아무래도 지자체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농업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어른들이 본부에 가입해 회원들의 활동을 든든하게 지켜줘야 합니다. 회원들이 4-H활동을 잘할 수 있게 돕는 일이 본부의 역할 아닙니까?”
젊은 회원들을 향한 마음과 실천하는 열정이 빛나는 김영운 회장의 모습에서 솔선하는 4-H지도자의 모습을 배운다.
 〈이은영 기자 eylee@4-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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