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15 격주간 제811호>
[우리얼 돋보기] 서대문형무소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1907년 인왕산 기슭에 일본인이 설계하여 건립한 감옥이다. 약 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목조건물을 짓고 ‘경성감옥’이라 불렀다. 종로의 감옥에서 500여명을 데려와 수용하고 광복을 맞이하는 1945년까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과 박해,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은 곳이다. 애국인사들이 늘어나자 1912년 일제는 마포구 공덕동에 감옥을 또 지어 경성감옥이라 하고, 원래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이라 불렀다.
1923년 서대문감옥은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고 1944년에는 2890명이 수용됐다. 18세 미만의 소녀들과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까지 수용했으며, 김구선생·강우규·유관순 열사 등이 이곳에 수감됐었다. 유관순 열사는 이곳에서 목숨을 다했다. 1946년 광복 직후에는 ‘경성형무소·서울형무소’로 바뀌고,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수용됐다.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바뀌었고,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변동으로 인해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됐다. 1988년에 사적지로 지정됐다.
  〈자료참고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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