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가운데서 종아리를 맞는 것처럼 부끄럽게
若撻于市(약달우시)
- 《통서(通書)》 중에서"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사회의 기초적인 의사결정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10명 중에 9명이 찬성하고 1명이 반대하는 것이라면 그 사안은 9명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6:4로 의견이 갈린다면? 아니면 누군가 1명이 기권을 해서 5:4가 된다면? 애매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의견을 발표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 딱 떨어지는 수가 아닌 경우도 생긴다. 199명이 참석하여 100:99로 의견이 갈리는 수도 생길 수 있다. 이럴 경우에도 다수결의 원칙은 존중받아야 할까?
어떤 사람은 다수결의 원칙은 강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폭력적인 절차라고 말하기도 한다. 소수의견은 무시되고 무조건 대다수의 의견을 따르도록 강요받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의미다. 다수결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다수결과 조금 다른 위치에 만장일치가 있다. 이것은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해야만 그 사안이 통과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단 한 사람의 반대도 없다는 것은 오히려 비민주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수의견이 존재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서로 의견이 다르다면 의견에 통일을 볼 때까지 결정을 미루어야 한다는 것이 만장일치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만장일치야말로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의견과 의견이 맞붙어 표 대결을 하여 승자독식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또 다른 대안을 찾아가는 방식이 바로 만장일치라고 그들은 말한다.
여러 사람의 의견 일치를 말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누군가 의견을 제시할 때, 그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도 있지만, 의견이 아니라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누구냐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평소 그 사람에게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 사람의 의견은 잘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반대라고 외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와 친하거나 내 주변의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소!’를 외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결국 다수결이든 만장일치든 따지기 전에 선입견 없는 경청이 가장 중요하다. 선입견 없이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옳다는 뜻이다.
중국 상(商)나라의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던 이윤(伊尹)은 자신이 모시는 왕이 올바른 정치를 펼치지 못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고, 백성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여 거리에 나가 종아리를 맞는 것처럼 생각했다(伊尹 恥其君不爲堯舜 一夫不得其所 若撻于市).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다고 윗사람을 비판한 것이 아니다. 그를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설득하지 못한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다. 자신이 재상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왕의 잘못은 바로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겼다. 부끄럽게 되지 않기 위해 그는 최선을 다해 왕을 설득하고 바른 길로 가도록 도왔다. 가난하고 무능력한 백성들을 비판하지도 않았다. 게으르고 무식하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을 가난하게 만든 것이,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없도록 만든 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단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한 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이윤도 이러했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치 스스로가 법을 집행하는 법관처럼 거만하게 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상대와 나의 의견이 다른 이유를 상대에게서 찾는 게 아니다. 나에게서 찾는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책망하는 것, 그것이 올바른 사람의 길이 아닐까.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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