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5 격주간 제809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내가 나를 만나다
사진을 보며 묻는다. 넌 누구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니?

얼마 전 사촌이 느닷없이 사진 한 장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발아래 실뭉치가 있는 백일 사진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사촌 집에 있던 내 사진을 보내 온 것이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너무나 어린 내 모습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나는 나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 난데 내가 모르는 나를 바라보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났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혼탁하고 찌든 일상 속에서 완전히 변해버린 나. 나는 초라했다. 아기가 가졌던 해맑은 영혼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문득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 말이 가슴을 울렸다.
누구에게나 백일 때가 있다. 그때의 사진을 보면 만날 수 있다. 흑백 사진 속, 인위적인 그 어떤 것도 가미되지 않은 순백의 아기를!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그 순수한 영혼을 마주하면 내 살아온 날이 보인다. 욕망도, 고통도, 좋고 싫은 것도, 누구를 한 번도 미워한 적 없는 자신의 얼굴! 들풀처럼 연약했지만 아무 두려움이 없었던, 기적 같은 시간이 내게 있었음을 알게 된다. 백일 사진을 보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강한 열망을 느꼈다. 허공과 같은 표정 속에서 흘러나오는 무한한 선함, 그 속에 깃든 고요. 그 꽉 찬 고요 속에는 숨소리밖에 없는 듯했다. 기억나지 않는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즘 명상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홍천에 위치한 나봄 명상센터에서 처음으로 명상 수련을 했다. 명상은 마음의 고요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눈을 감고 앉아 숨을 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숨을 쉬고 사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거기서 1박2일 동안 내 호흡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태어나면서부터 쉬었던 숨,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온 건 숨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숨 속엔 길이 있을 것이다. 내 백일 사진 속, 그 무념무상의 평화로움 속으로 돌아가는 길. 명상을 하면서 너무나 멀리 온 지친 나의 몸뚱어리가 고요히 앉아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내 안에 촛불이 켜지듯 백일 사진 속 그 아기가 보였다.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산속에 핀 야생화처럼 존재 자체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갈망이 일어난다. 잘 입히고 잘 재우고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우리 몸의 끊임없는 욕망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정신은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가는 걸 보게 된다. 막 태어난 아기는 불면증에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몸에 빠져 정신을 방치하면 나처럼 불면증에 위장병에 비염까지 겹친다는 걸 말해준 것도 백일 사진이다.
나는 ‘너희도 어영부영하다가는 이 꼴 난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백일 사진을 아이들에게 전송했다. 아이들은 엄마도 이렇게 어릴 수 있다는 게 황당하다고 했고 세월이 잔인하다고도 했다. 세월이 잔인하다는 걸 백일 된 아기가 선포한 것이다.
나는 나의 백일 사진을 꺼내 놓고 자주 바라본다. 그리고 묻는다, 넌 누구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니?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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